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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하준우]무사히 다녀오세요

입력 | 2005-12-10 02:54:00


‘범털’, ‘개털’, ‘뺑끼통’, ‘강아지’, ‘방장’….

고교 시절 ‘어둠의 자식들’이란 소설에 나오는 이런 은어를 통해 들여다본 감옥은 별난 세계였다. 항상 음침하고 무섭게만 여겨졌던 감옥에도 작은 사회가 있었고 희로애락도 있었던 것이다.

대학 시절 감옥은 ‘국립대학’이었다. 운동권 친구들은 서슴없이 감옥에 ‘입학’했고 ‘졸업’할 때쯤이면 이론가가 되어 있었다. ‘빵잡이’들은 병역을 면제받아 곧바로 공장에 들어가 노동활동가로 변신할 수 있는 ‘특전’을 누리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감옥의 진면목과 딱 맞아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얼마 전 감옥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한 친구는 “정말 다시는 가기 싫은 곳”이라고 말했다.

감옥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굳이 따지자면 자유일 것이다. 오늘날 감옥은 자유형을 집행하는 곳이다. 자유형이란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징역, 금고, 구류를 말한다.

영국 내무부의 2003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수감자는 약 875만 명이다. 인구 10만 명당 수감자는 미국이 686명으로 세계 1위이다. 이어 케이맨제도(664명) 러시아(638명) 등의 순이다. 영국은 139명으로 중위권이지만 유럽연합(EU)에서는 가장 많다. 한국은 133명으로 중위권이다.

미국 영국 한국 등 자유 국가라 하더라도 수감자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자유와 그에 따르는 법적 책임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일탈자를 처벌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13일부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홍콩의 수감자 수는 인구 10만 명당 175명으로 중국 본토(111명)보다 훨씬 많다. 이런 홍콩이 농민 등 약 2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한국 시위대에 대비해 감옥을 비워 놓고 보도블록을 본드로 붙이는 등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니 걱정이 앞선다.

홍콩 언론들은 올여름부터 한국 농민에 대해 ‘호전적인(militant)’ ‘폭력적인(violent)’ 등의 수식어를 붙여 가며 홍콩 당국의 시위 대비책을 보도하고 있다. 지난달 홍콩에 갔던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선발대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폭도가 아니다. 우리는 홍콩의 법을 따를 것이다”고 항변했다.

한국에선 한번쯤 과격한 시위를 했더라도 농민을 폭도로 부르지 않는다. 찌들어 가는 농촌의 현실을 이해하는 이들은 농민의 격정이 한번쯤 폭발한 것으로 여길 뿐이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소중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농민에게서 평소 폭도라는 이미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홍콩은 한국이 아니다. 홍콩 당국은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이경해(55) 전 회장이 자결한 사실과 최근 한국 내 농민시위에서 폭력 행위가 있었던 사실만 중시한다. 홍콩은 최근 분리대를 넘는 시위자를 최고 5년형에 처할 수 있게 관련 법을 개정했을 정도다.

전농 선발대는 시위대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수 있는 장소를 요구했다고 한다. 시위대가 편안하게 앉아서 시위를 할 수 있도록 분리대 높이를 낮춰 달라고 홍콩 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평화 시위를 위한 노력이다. 다음 주 홍콩에 가는 농민들이 현지에서 목청껏 농업 현실을 외치길 바란다. 그리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란다.

하준우 사회부 차장 ha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