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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도청도 속속 드러나…베일 벗는 DJ정부

입력 | 2005-12-07 03:07:00


검찰이 최근 공개한 임동원(林東源) 신건(辛建)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소장과 수사기록 등엔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이 정치 사찰이나 동향 파악을 목적으로 여야 정치인과 언론인을 무차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 있다.

도청은 반인권적 반민주적 범죄행위임에도 불구하고 DJ 측은 이에 대해 유감표명은 없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인 DJ 정부에서 도청은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DJ가 자신의 집권 당시 있었던 국정원의 도청에 대해 면책될 수 있는지, DJ 정권이 표방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실상은 무엇인지 등을 둘러싸고 혼란과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노벨상 수상 이후 도청 집중=두 전직 국정원장의 공소장에는 DJ 정부의 도청이 공교롭게도 DJ가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12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직후인 2001년 초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돼 있다.

2000년 말과 2001년 초는 DJ 정권의 각종 실정(失政)에 대해 안팎에서 비판이 쏟아지던 시기다.

2000년 말 여당인 민주당에선 소장 개혁파 의원들이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 등 동교동 가신(家臣)들의 부패와 권력전횡을 지적하며 이들의 퇴진을 요구하는 ‘정풍운동’이 벌어졌다.

또 사회 원로와 보수층에서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DJ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분위기 조성을 위한 ‘대북 유화책’을 쏟아냄으로써 대북 정책에서 중심을 잃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에 대해 DJ는 12월 10일 노르웨이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참석하고 온 뒤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정쇄신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12월 17일 권노갑 씨를 최고위원 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상징적 조치를 취했을 뿐 담화는 발표하지 않았다.

오히려 DJ는 2001년 1월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강력한 정부’를 실현하겠다고 공개 선언했으며, 이에 때맞춰 국정원은 무차별 도청에 착수하는 등 쇄신과는 반대로 나갔다.

DJ의 강수는 특히 언론 등 외부의 비판세력에 집중됐다. DJ가 기자회견에서 “각계가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 직후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전격 단행됐으며 언론사 간부에 대한 국정원의 집중 도청도 시작됐다.

▽김 위원장 답방과 언론 압박=DJ가 이처럼 언론에 전방위 압박을 가한 것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대한 집착 때문이란 게 당시 여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답방이 이뤄져야 6·15남북공동선언이 완성되며, 그래야만 ‘통일에 획기적인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답방에는 장애가 있었다. 보수층에는 김 위원장의 답방에 대한 비판적 정서가 있었다. 일부 단체는 공개적으로 답방 반대를 천명하며 김 위원장에 대한 거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당시 동아일보 등 일부 언론은 이런 정서를 전하면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앞서 ‘6·25남침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DJ 정권은 2001년 초 언론사 세무조사와 도청으로 대응했으며 나아가 세무조사를 언론에 대한 회유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세무조사가 한창이던 2001년 6월 4일 당시 손영래(孫永來) 서울지방국세청장이 갑자기 동아일보 경영진을 찾아와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자리에서 동아일보 측은 “김 위원장은 남한을 접수했다고 판단되는 상황이 아니면 서울에 오지 않는다. 지금은 와 봤자 보수층이 반발할 게 뻔한데 오겠느냐”며 ‘답방 집착’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닷새 뒤인 6월 9일엔 당시 안정남(安正男) 국세청장이 동아일보 경영진을 만나러 왔다. 그 자리에서도 동아일보 측은 “김 위원장은 오지 않는다. 너무 답방에 집착하다가 국정을 그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DJ가 2000년 말 정풍운동 때 약속했던 국정쇄신 담화를 하지 않고 넘어간 사실을 지적하며 “이제라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진솔하게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안 씨는 “대통령께 보고하겠다”며 이를 받아 적었다.

그 시점은 DJ가 민주당 최고위원들과의 회동(6월 4일)에서 “6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쇄신 구상을 밝히겠다”고 약속한 상태였다. 하지만 DJ는 이번에는 가뭄을 이유로 돌연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그리고 정부는 6월 29일 서울지방국세청장의 기자회견 형식으로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대대적으로 발표하고 동아일보 등 3개 언론사 사주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를 전후해 친여 매체 등에서는 동아일보를 겨냥한 집중 비난이 시작됐다. 세무조사를 받은 언론사 중에서도 특히 동아일보가 ‘괘씸죄’에 걸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윤승모 기자 ysmo@donga.com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