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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5-12-06 03:01:00

그림 박순철


“이미 대왕께 아뢰었듯이 지금 우리 제나라는 아직 대군을 내어 초나라를 칠 형편이 못 됩니다. 민심이 안정되어 나라를 비우고 멀리 군사를 내도 될 만하면 바로 남쪽으로 내려가 팽성을 우려 빼겠습니다.”

한신이 송구스러운 듯 그렇게 대답했다. 장량이 조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비로소 속을 털어놓듯 말했다.

“동해의 바닷물이 아무리 많아도 제때에 이르지 못하면 관중의 작은 불도 끄지 못하는 법입니다. 또 수레바퀴 자국에 사는 미꾸라지에게는 제때에 부어진 넉 되의 물이 사해(四海)에 갈음할 수 있습니다. 지금 광무산을 에워싸고 있는 항왕의 기세가 워낙 사나워 자칫하면 모든 일이 글러버린 뒤에 제왕의 원병(援兵)이 이르게 될까 걱정입니다.”

“정히 그렇다면 우승상 조참과 기장 관영부터 대왕께 돌려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교동에 있는 조참에게 사람을 보내 군사를 정비하는 즉시 서쪽으로 달려가게 만들겠습니다. 조참의 군사들이 제나라를 벗어나면 바로 서초(西楚)의 영지인 산동을 가로지르게 되니 절로 항왕의 뒤를 어지럽히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맞춰 대왕의 진채에 이르게 하면 크게 낭패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노현(魯縣)에 있는 관영에게도 사람을 보내 초나라 장수 공고(公(고,호))를 쳐부수는 대로 군사를 남쪽으로 돌리게 하지요. 관영의 군사들이 풍패(豊沛)를 거쳐 설(薛) 유(留) 소(蕭)로 내려가면서 팽성과 항왕의 연결을 끊어버리게 하면 그 또한 항왕에게는 적잖은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관영이 대왕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게 해도 너무 늦어버리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한신은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미진한 듯 보탰다.

“선생께도 날랜 군사 1만을 딸려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 큰 군사는 아니지만 대왕께 데리고 가서 요긴하게 쓰도록 하십시오.”

장량이 느끼기에도 당장 한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는 것 같았다.

한편 그때 패왕 항우는 그 일생 별로 느껴 보지 못한 불안과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한 팔처럼 여기던 맹장 용저가 유수(유水)가의 한 싸움에서 한신에게 여지없이 지고 목이 베인 일 때문이었다. 오중(吳中)에서 몸을 일으킬 때부터 용저의 무용과 기개를 잘 알고 있는 패왕에게는 그런 용저가 한신처럼 허풍스러운 책상물림에게 갑절이나 되는 군사를 거느리고도 졌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잘못 전해진 소식이거니 하며 꾸짖어 물리쳤으나, 날이 가도 잇달아 전해오는 것은 처음의 소식을 확인해 주는 것들뿐이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정말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싸움의 이치가 있다는 것인가….’

그날도 패왕은 두렵다기보다는 참으로 알 수 없다는 느낌에 허둥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용저가 한신에게 져서 목이 잘리고 그가 패왕에게서 받아간 5만 군사도 한 사람 남김없이 죽거나 사로잡혔다는 소문이 어느새 진중을 떠돌아 초나라 장졸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광무간으로 나가 큰소리로 한군을 놀려대거나 욕설을 퍼붓던 기세는 어디 가고, 불길한 침묵 속에 움츠리고 있다가 겁먹은 눈길로 흘금거리며 추위와 배고픔만 호소할 뿐이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