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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졸이상 2000명 취업교육 분석]직업기초능력 선진12개국중 11위

입력 | 2005-12-03 03:00:00


2001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정보통신 회사에 입사한 채모(29·여) 씨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론 업무를 처리할 수 없어 너무 당황했다. 그는 “퇴근 뒤 무역 전반에 대한 학원 강의를 듣고 있다”면서 “자료조사나 기획서 쓰는 법 등 어느 회사에서나 필요한 기초적인 능력이 없어 회사 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직능원)의 ‘대졸 취업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대졸자의 직업기초능력과 기업이 요구하는 업무능력의 괴리도는 선진국에 비해 매우 컸다.

▽업무능력 괴리도=직능원은 국내 최초로 대졸자의 능력 괴리도를 조사했다. 4년제 대학 졸업생에게 직업기초능력과 관련된 문제해결능력, 자기관리 및 개발능력, 기술능력 등 35가지 항목(항목별 5점)을 조사한 결과 직업기초능력과 기업이 요구하는 업무능력의 괴리도는 22.4점이었다.

이는 선진 12개국과 비교할 때 일본(28점)을 제외하곤 가장 높은 수치다. 스페인은 8점으로 가장 낮았으며 대부분 국가가 18점 이하였다.

졸업생의 직업기초능력 점수는 한국이 175점 만점에서 118점이었다. 1위인 스웨덴(135점)과 17점 차가 났다. 이 점수 또한 일본(112점)을 제외하고 가장 낮았다.

효성그룹 인사팀 관계자는 “대졸자가 직장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데 길게는 2년이 걸린다”면서 “기업은 신입사원 교육에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학교 취업교육은 ‘유명무실’=2003년 8월 이모(25) 씨는 졸업을 앞두고 대학 취업상담센터를 찾아 추천서를 받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처럼 각 대학의 취업 프로그램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 대학 취업정보실 관계자는 “2년 전에 취업 지원 교과목을 만들자고 건의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인사과의 한 관계자는 “대학이 졸업생에게 인증서를 주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곤 있지만 이 같은 프로그램은 실제 직업능력과 거리가 있다”면서 “대학의 각종 프로그램을 신뢰할 수 없어 프로그램 이수자에게 입사 시 가산점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습과 체험 위주로=대학 졸업생들은 앞으로 학부 교육이 학문보다는 직업능력을 키우는 데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문 지향을 1점, 직업능력 지향을 7점으로 하고 대학 교육의 지향을 조사한 결과 평균값이 4.5였다. 지방대 졸업생(4.6)들이 수도권 대학 졸업생(4.3)보다 직업능력 지향성을 더 강조했다.

졸업생들은 대학이 이론보다 실습 위주로 교육하길 원했다. 강화해야 할 대학 교육으로 실험·실습교육이 1위였으며 현장실습, 인턴십 등과 같은 직업현장 체험교육이 2위였다. 기초교양 교육은 최하위였다.

대학생 김태흥(24) 씨는 “경험을 쌓기 위해 인턴제에 관심은 많지만 인턴 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며 “대학이 직장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양대 최기원 취업지원팀장은 “교과과정심의위원회를 열 때 140여 개 기업에 자문을 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필요한 과목을 선정하는 등 노동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직능원 HRD정보통계센터 채창균(蔡昌均) 소장은 “이 조사는 대학 교육이 직업능력을 육성할 수 있도록 더욱 실용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서 “이 같은 방향은 정부의 교육 정책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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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 대학생들 자구책

“정당한 이유 없이 F학점을 줄 수는 없습니다.”

F학점을 달라고 사정하는 대학생들에게 한 대학 교수가 이같이 경고(?)했다.

요즘 한 학기라도 대학을 더 다니기 위해 학교와 교수에게 사정하는 대학생이 적지 않다. 연세대의 경우 9학기 이상을 다닌 졸업생 수가 2001년 1049명에 2002년 1151명, 올해 1441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기업들이 백수 졸업생보다 재학생을 선호하기 때문에 직장을 구할 때까지 대학에 남아 있으려는 ‘취업전략’ 탓이다. 실제 삼성그룹 등은 졸업생에게는 아예 입사시험 지원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서울 A대 이모(24·여) 씨는 “올 2월 졸업을 앞두고 20여 곳의 기업에 낙방한 뒤 백수가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학교 행정실을 통해 교수에게 넘어간 졸업논문을 빼앗다시피 해서 졸업을 미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도서관을 찾는 졸업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국대의 졸업생 도서관 출입증 발급자 수는 지난해 1456명에서 올해 1603명으로 늘었다. 중앙대는 열람실 부족을 이유로 졸업생의 도서관 이용자 수를 200명으로 제한했다.

졸업생 박모(28) 씨는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후배에게 출입증을 빌리는 것은 기본”이라며 “일부 졸업생은 도서관 출입용 바코드를 복사하는 등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 대학의 학적담당자는 “취업을 위해 학교에 남으려는 학생들이 늘어나면 강의실과 도서관 부족, 수강신청 문제 등으로 정상적인 과정을 밟는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면서 “하지만 강제로 막을 방법도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