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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효성]외자유치, 안에서 발목 잡는 사람들

입력 | 2005-11-19 03:04:00


“정부와 시민단체 등의 시장 개입으로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할지, 투자를 얼마나 더 확대할지에 대한 의사결정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노사문제 해결은 아주 중요하며 노사정책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한국의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 추진을 위해서는 한국 전체가 더 국제화될 필요가 있다.”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에서 세계 유력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한국의 경제정책 책임자에게 한 쓴소리들이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CEO들이 한국의 투자환경에 대해 털어놓은 따끔한 충고는 귀를 활짝 열고 들을 필요가 있다. 정보기술(IT)이나 생명과학 등 매력적인 투자요인을 갖추고 있음에도 한국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게 된다는 대목에서는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다.

이들은 세계 각국의 기업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외자 유치에 혈안이 돼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의 유럽연합(EU) 가입과 중국, 인도 등 새로운 강자들이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의 경영현장을 거울처럼 들여다보는 이들의 지적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굳이 거물급 해외 CEO의 충고를 듣지 않더라도 ‘지금’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경영인들의 생생한 현장 증언을 들어 보면 금세 기운이 빠진다.

수년 전 정부가 목청을 높였던 ‘원스톱 서비스’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공장을 하나 세우려 해도 숨 막힐 정도의 서류 뭉치에 도장을 받느라 중도 포기하는 기업은 없는가? 극심한 노사분규 때 유행했던 ‘아직도 제조업하십니까’라는 말은 사라졌는가?

기업 활동이나 국책 산업이 시민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에 발목 잡혀 지지부진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얼마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APEC 바로 알기 수업 교재에서 반(反)세계화를 주장한 것은 국수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국처럼 자본주의 역사가 오래된 국가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국인 직접투자 규모가 30%를 훨씬 넘는 데 비해 한국은 10%를 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축적한 자본만으로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빈국으로 꼽혔던 아일랜드와 중국을 보더라도 외국인 투자가 경제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자명해진다.

외국인은 맘씨 좋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외국인 투자를 적대시하고, 제도적인 차별로 나타난다면 새로운 투자 유치는커녕 그나마 한국에 들어와 있던 기존의 투자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게 될 것이다.

우리 앞에는 숙제가 산적해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정부가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일이다. 키워드는 규제 완화가 돼야 할 것이다. IT나 서비스산업 등 인구 증가 요인이 크지 않은 업종에 대해서는 과감한 인센티브를 주고라도 수도권에 유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다.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도 시대의 대세인 만큼 정책의 우선순위에 넣어야 한다. 외국인 투자나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한국처럼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크고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어떤 대안이 있을 수 있나.

한때 아시아에서 앞서 나갔던 필리핀이 주목받지 못하는 국가로 전락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외국인 투자의 철수’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김효성 전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한국산업기술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