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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형준]“모른다…기다려라…없다” 황당한 정책홍보시스템

입력 | 2005-11-03 03:06:00


총리실을 맡고 있는 기자는 이틀 전 정부의 ‘고위 공직자 검증 기준’을 취재하다 정부의 ‘허술한’ 정책홍보시스템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1일 오전 9시 기자는 국무회의 안건인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에 관한 법률안을 살펴보던 중 ‘정무직 공무원,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회의 위원 등은 본인뿐 아니라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까지 인사 검증을 한다’라고 돼 있는 대목에 눈이 멈췄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곧바로 법률안의 소관 부서인 중앙인사위원회 정책총괄과 서모 사무관에게 전화로 문의했다. 그는 “언론 창구는 정책홍보담당관실로 일원화돼 있으니 그쪽에 문의하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정책홍보담당관실로 연락을 했다. 이모 담당자는 “알아봐 주겠다”고 말한 뒤 5분 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법률안 의결이 다음 주로 연기됐다”고 엉뚱한 답변을 했다.

기자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것”이라며 재차 부탁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도록 회신이 없어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정책총괄과 서 사무관에게 이야기를 해 놓을 테니 직접 통화하라. 정책홍보실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오전 10시경 서 사무관에게 다시 전화했지만 그는 “정책홍보실에 자료를 줄 테니 정책홍보실과 통화하라”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에 대한 현행 기준은 간단하게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대답은 똑같았다.

서 사무관이 자료를 넘길 시간을 충분히 감안해 오후 6시경 정책홍보실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변모 씨라는 직원이 전화를 받아 “정책총괄과에서 넘어온 자료는 아무것도 없으니 다시 상황을 파악해 답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10분 뒤 전화가 왔다. 변 씨는 “청와대가 지금까지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을 해 왔기 때문에 인사위가 만든 현행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언론에서 일선 부서로 바로 전화해 취재한 내용이 잘못 보도되는 사례도 있어 정책총괄과에서 좀 과민하게 반응했다.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9시간 만에 ‘대단한’ 답변을 들은 기자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정부가 기자의 각 부서 방문 취재를 금지하고 새로운 정책홍보시스템을 마련한 뒤 이뤄지고 있는 취재 현장의 한 단면이다.

박형준 정치부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