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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도청문건 폭로 당시 관련자 2인 인터뷰

입력 | 2005-09-29 03:03:00


“당초 당에서 입수한 국가정보원 도청 자료 뭉치의 높이가 1m 가까이 됐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도청 문건 폭로작업에 깊숙이 관여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의 측근은 28일 이렇게 말했다.

폭로 기자회견 당사자였던 당시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도 이날 본보 기자와 만나 양손으로 머리와 배를 각각 가리키며 “자료가 이만큼 많았다고 들었다. 그중 일부만 공개한 것이다”고 밝혔다.

▽입수 경위=김 전 총장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 직원이 한나라당 모 인사에게 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전달했고, 등장인물에 대한 확인작업을 거쳐 자료 중 일부를 11월 28일과 12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공개했다.

이는 이 전 총재 측근의 말과도 일치한다. 그는 “당에서 받은 자료는 30∼40장 분량이었다. 이 자료에 대한 확인작업을 했다. 이 중 언론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추려냈다. 공개된 것은 애초 내가 받은 자료의 절반 정도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수 경위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당시에는 정보통인 같은 당 정형근(鄭亨根) 의원이 입수하여 보관해 오던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그러나 김 전 총장은 “내가 뭐 하러 개인이 입수한 것을 대신 발표하겠느냐”고 부인했다.

그는 “당시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에게 발표를 시키려 했는데 부산에 내려가고 없어서 내가 했다”고 했다.

그는 국정원 제보자가 누구였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신문 사설들도 제보자를 밝히라고 했고 전달자를 설득했으나 안 됐다. 그러나 전달자가 상당히 믿을 만한 분이었기 때문에 더 묻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김 전 총장은 ‘이 전 총재는 언제 도청 문건의 존재를 알았느냐’는 물음에 “나한테 문건이 왔는데 총재가 모르고 있었겠는가. 당시 이 총재는 유난히 도청에 신경을 써 비화기를 사용하고 휴대전화도 짧게 하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시민단체 간부도 도청=이 전 총재의 측근은 “공개되지 않은 내용 중에는 시민단체 간부가 재야인사와 통화한 것, 모 방송사 사장이 박지원(朴智元)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통화한 것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주요 언론사 사장을 도청한 내용, 여당 인사들끼리의 대화 내용 등도 있었고 도청된 기자의 수도 당초 공개된 8명보다 많았다고 이 측근은 전했다.

그는 “대선 막판에 3탄, 4탄을 터뜨리려 했으나 폭로전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많아 포기했다”며 “내가 갖고 있던 도청 자료는 대선 다음 날 모두 폐기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은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 측과 통화한 내용도 있었는데 폭로 당일 박 의장이 연락이 안 돼 폭로하고 나서 물었더니 내용이 다 맞다고 했다”고 소개했다.

김 전 총장은 “검찰은 이미 전달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있으며 그를 소환해 조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