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갈피 속의 오늘]1915년 佛시인 구르몽 사망

입력 | 2005-09-27 03:15:00


‘시몬의 시인’ 레미 드 구르몽.

시인이자 소설가요, 극작가이자 철학자였던 구르몽. 그의 본업은 평론가였다.

현대문학의 밑그림이 된 프랑스 상징주의 운동의 대부(代父)였다. 에즈라 파운드와 T S 엘리엇 같은 ‘20세기 시인’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세기말의 ‘완벽한 비평가’였다.

상징주의 운동은 반란을 도모했다. 상징파들은 틀에 박힌 시의 기능과 형식에서 해방되기를 원했다. 인간 내면의 감각적 인상과 형언하기 어려운 직관을 환기하고자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은유와 상징에 기대 근원적인 신비를 전하고자 했다.

“관습의 모방과 답습은 문학적 범죄행위다!”

18세기 회의주의 철학의 적통을 이어받았던 구르몽. 그는 모든 진리는 상대성을 갖는다고 믿었다. 미학만이 유일한 세상의 척도였다.

“이 세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이 세상은 나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세상은 생겨나고, 세상은 나의 노예이다. 그 누구도 이 세상에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바야흐로 구르몽의 문학적 명성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1891년, 그는 10년간 몸담아온 파리 국립도서관 사서직에서 쫓겨난다. 잡지에 실린 글이 프랑스의 국수주의를 비판했대서다.

전 세계적으로 애송되고 있는 시 ‘낙엽’이 발표된 게 그 이듬해.

낙엽을 밟을 때마다 절로 떠오르는 시 ‘낙엽’.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가 후렴처럼 연주(演奏)되는 이 시는 행이 거듭될수록 화자의 애상(哀傷)이 짙어지며, 마지막에 이르러 스산한 기운이 뼛속까지 스민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 옷자락 소리를 낸다…//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 되리니/가까이 오라, 밤이 되고 바람이 분다….”

그러나 정작 ‘시몬의 시인’은 여인들과 담을 쌓고 지냈다. 낭창에 걸려 얼굴이 추해지자 파리의 아파트 서재에 파묻혔다. “금욕은 성적 일탈 가운데 가장 기묘한 것”이라고 했던 구르몽에게 은둔은 지독한 형벌이었을 터.

그래서일까. 그는 간절히 시몬을 부르지만 그 분위기는 차갑고도 ‘멀다.’

“…시몬, 눈은 네 목처럼 희다/시몬, 눈은 네 무릎처럼 희다//…눈은 불의 키스에 녹지만/네 가슴은 이별의 키스에만 녹는다//눈은 소나무 가지 위에서 슬프지만/네 이마는 밤빛 머리카락 밑에서 슬프다….”(‘눈’)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