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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부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깜짝인사’

입력 | 2005-09-23 03:04:00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깜짝 인사’가 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정 회장은 20일 한규환(韓圭煥) 현대모비스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것을 비롯해 계열사 사장단 5명을 새로 임명했다. 지난달 11일 최한영(崔漢英) 현대·기아차 마케팅총괄본부장 겸 전략조정실장(사장)을 상용사업담당 사장으로 임명한 지 불과 한 달 남짓 만이다. 정 회장은 왜 ‘수시 인사’를 선호할까. 또 이런 인사 스타일에 따른 장단점은 뭘까.》

○ 임원급 인사만 올해 들어 10여 차례

현대·기아차그룹도 매년 연말이나 연초 정기 임직원 인사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부사장급 이상 임원에게 정기 인사는 큰 의미가 없다.

정 회장은 이번 인사를 포함해 올해 들어 각 계열사 부사장 이상의 승진 또는 전보 인사를 10여 차례나 했다. 이처럼 수시로 임원 인사를 하는 것은 다른 대기업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시기뿐 아니라 인사의 내용도 ‘깜짝쇼’ 수준이다.

이번에 사장으로 승진한 윤여철(尹汝喆) 현대차 울산공장장은 1979년 입사 후 2003년 이사로 승진하기까지 24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후 1년이 못 돼 상무가 되고 다시 3개월 만에 전무에 올랐으며 8개월 후에는 부사장, 다시 8개월 후에 사장이 되는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내친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기도 한다. 이재완(李在完) 현대·기아차 마케팅 총괄본부장 겸 전략조정실장(부사장)은 퇴직한 지 6개월 만에 복귀해 요직에 임명됐다.

정 회장의 독특한 용인술(用人術)은 장단점이 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고위 관계자는 “정 회장의 수시 인사는 필요한 시기와 장소에 필요한 인재를 배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며 “특히 현대·기아차처럼 성장하는 기업에 적합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조직에 끊임없이 긴장감을 줘 항상 최선을 다하게 한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수시 인사는 현장 책임자의 실수를 잘 용납하지 않는 정 회장의 스타일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문경영인들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 자칫 업무 연속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실세라는 말 나오면 조심해야”

최근 현대·기아차그룹 인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세대교체’ 조짐이 뚜렷하다는 것.

이번 인사에서 현대모비스의 전신인 현대정공 시절부터 정 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박정인(朴正仁) 현대모비스 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났다. 올해 초에는 윤국진(尹國鎭) 기아차 사장이 회사를 떠났고, 지난해에는 유인균(柳仁均) 현대 INI스틸 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나는 등 60세 이상 전문경영인이 잇따라 자리를 떠났다.

‘실세(實勢)’로 불릴 만한 인물을 오랫동안 주변에 두지 않는 것도 특징. 이 때문에 현대·기아차그룹에서는 “실세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불문율이다.

지난달 퇴사한 이상기(李相起) 현대모비스 부회장은 올해 4월까지 그룹의 핵심인 기획총괄담당 최고책임자였다. 이 부회장에 앞서 기획총괄담당을 맡았던 정순원(鄭淳元) 사장은 로템 부회장으로 옮겨 ‘직위는 승진했지만 실권은 약해졌다’는 평을 들었다.

최한영 사장이 종전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상용차 부문 사장으로 옮겼을 때도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이처럼 현대·기아차에선 정 회장의 측근 가운데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는 경우가 드문 편이다. 이는 ‘핵심 측근’의 권한이 막강하고 쉽게 영향력을 잃지 않는 다른 그룹들과는 대조적이다. 박정인 회장이 물러나면서 이제 정 회장의 속내를 읽을 만한 전문경영인은 설영흥(薛榮興) 부회장과 김동진(金東晉) 부회장 정도가 남았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분석이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