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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불안 선거’

입력 | 2005-09-20 03:04:00


추쿤프츠앙스트(zukunftsangst·미래에 대한 불안). 18일의 독일 총선거를 지배한 유권자 정서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 한마디로 요약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11.6%의 실업률에 언제 실직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독일인들은 돈이 있어도 못 쓴다. 경제가 과연 나아질 것인가. ‘두려움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 집단 신경쇠약증 단계다. 선거 결과는 어떤 당에도 과반수를 주지 않은 ‘혼미(昏迷)의 연정(聯政)’으로 나타났다.

▷“씻겨 주세요. 물에 젖게 하진 말고.” 정치학자 저겐 폴터(마인츠대) 교수가 지적한 독일인들의 심리다. 고용의 경직성을 완화하고 과도한 복지혜택을 줄여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건 안다.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보수야당 기민련이 제1당이 되고 친(親)기업적인 자민당이 약진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그래도 개혁은 두렵다. 집권 사민당이 불과 3석차로 추격한 것도 이 때문이다. “메르켈이 총리가 되면 사회 정의는 사라진다”고 엄포를 놓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의 ‘미디어 전략’이 상당히 성공한 셈이다.

▷분명해 보이는 건 누가 총리가 돼도 궁극적으론 같은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메르켈 당수의 경제 공약과 슈뢰더 총리의 ‘어젠다 2010’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기업 경쟁력 제고와 시장 활성화가 초점이다. 과감한 정공법이냐, 점진적인 우회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큰 차이다.

▷독일 국민 36%가 기민련과 사민당의 대연정을 선호한다지만 이렇게 되면 메르켈 당수는 호텔 엘리베이터에 갇혀 버린 객실 손님 꼴이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한 정부를 구성할 수 없어 소신껏 개혁 정책을 펴기 힘들어서다. 세수(稅收) 1900억 유로 중 800억 유로를 연금으로, 300억 유로는 실업수당으로, 400억 유로는 국가 부채에 대한 이자로 쓰는 나라에서 ‘복지놀음’을 계속하는 건 국가적 자살이나 다름없다. 불안한 나날을 얼마나 더 보내야 독일인들은 개혁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