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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이상한 수신료 소송']2000억 왜 포기할까

입력 | 2005-09-06 03:06:00


1심 재판에서 승소한 KBS는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왜 갑자기 조정 의사를 밝혔을까.

단순히 ‘실익’을 챙기기 위한 합리적 선택일까, 아니면 말 못할 속사정이 있는 걸까.

▽사건과 소송 경과=KBS는 지난해 8월 13일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관할 영등포세무서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판결 요지는 1996∼2000년 KBS가 받은 수신료를 방송용역의 대가로 보고 세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이를 돌려주라는 것.

이 사건은 1993, 94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KBS가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내면서 시작됐다. 당시 의원들은 수신료가 방송용역의 대가가 아닌 ‘준조세’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세금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소송의 1, 2심 재판부는 “수신료는 납세의무가 없다”면서도 “KBS가 자진납부했다”는 이유로 부당이득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KBS는 1999년 다시 국세청에 1996년 이후 낸 법인세와 부가세를 줄여 달라고 요청했고 국세청이 이를 거부하자 행정소송을 냈다.

그 직후 시민단체 등은 ‘KBS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을 하면서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같은 해 5월 “수신료는 특별부담금이지 방송용역 제공에 대한 대가가 아니어서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도 헌재 결정을 인용해 수신료가 부가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부는 2000년 12월 부가가치세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이로 인해 KBS는 2001년 이후 매년 120억 원 이상의 세금을 절감하게 됐다.

그러나 국세청은 2001년 23개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면서 KBS에 대해서도 290억 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KBS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KBS 측은 이 소송과 기존 소송을 병합했고 지난해 8월 1심 법원에서 대부분 승소했다.

▽환급 가능액과 조정안=KBS가 1심에서 승소해 법원이 돌려주도록 한 세금은 모두 2000여억 원에 이른다. 우선 법인세와 농어촌특별세 등은 1996년(320억여 원), 1999년(94억여 원), 2000년(196억여 원)분만 500억 원이 넘는다. 또 2003년에 부과된 1997년도 법인세 및 농어촌특별세 312억 원도 취소됐다.

2004년에 부과된 1998년도 법인세 및 농어촌특별세 67억여 원도 취소됐다. 부가가치세는 2001년에 부과된 1997∼2000년도 410억 원가량이 모두 취소됐다. 이에 따른 환급 가산금(이자 등)까지 포함할 경우 2000억 원이 넘는다.

그러나 KBS가 법원에 낸 ‘의견서’에서 요구한 금액은 506억 원. 세 차례에 나눠 추징 당한 법인세와 환급 가산금 등이다. 이 부분만 돌려받으면 항소심에 계류 중인 모든 소를 취하하겠다는 것이 KBS의 입장이다.

▽의미와 파장=1심 판결 이후 KBS는 소송 대리를 해 온 K 변호사가 ‘조정권고’ 요청을 거부하자 사내 변호사인 L 씨 명의로 의견서를 제출했다.

특히 KBS 측 조정의견에서 문제가 심각한 부분은 ‘향후 원고(KBS)가 납부할 정당한 법인세액에 대해선 세액산출방법에 대한 원고의 의견을 검토해 세무당국이 결정할 수 있도록 법원의 조정권고에 반영하고자 한다’고 밝힌 대목. ‘조정’ 이후 부과되는 세금에 대해선 세무당국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백기투항’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KBS가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결에 의해 당연히 환급받을 수 있는 세금을 미리 포기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경영 문제나 수신료 인상 등과 관련한 속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KBS 반박=KBS는 항소심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 “당초 대법원 판결과 헌재 결정에 따라 수신료를 사업 수입으로 하는 비영리사업이 존재할 수 없다고 보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며 “그러나 1심 법원은 방송업과 광고업을 구분해 법인세를 납부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이겨도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수익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산출 방법을 놓고 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어 조정을 선택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