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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뛰는 한국육상]육상연맹은 뭐 하나

입력 | 2005-08-25 03:28:00


《한국 육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

손기정(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서윤복(1947년 보스턴 우승)-함기용(1950년 보스턴 우승)-황영조(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이봉주(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2001년 보스턴 우승)로 이어져 온 마라톤 강국의 영예는 이제 옛말.

남자 100m에선 1979년 서말구가 세운 10초 34가 26년간 깨지지 않고 있다.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한국 육상.

그 원인과 대책을 2회에 걸쳐 짚어 본다.》

김이용(국민체육진흥공단) 기권, 제인모(국민체육진흥공단) 54위, 조근형(코오롱) 60위….

최근 끝난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마라톤이 받은 처참한 성적표다.

마라톤이 이 정도니 다른 종목은 겨우 숨만 쉬고 있는 수준으로 보면 틀림없다. 26년간 깨지지 않는 남자 100m 한국 기록을 비롯해 남자 200m(1985년 장재근 20초 41), 여자 원반던지기(1984년 김선화 51m 64), 남자 1만m(1986년 김종윤 28분 30초 54) 등도 20년간 제자리걸음이다.

▽삼성이 맡으면 다르다?=삼성중공업 출신 이대원 전 회장이 1997년 대한육상경기연맹에 취임하자 육상인들의 기대는 실로 컸다.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이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한국 육상에 단연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란 희망. 하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마라톤을 보면 박정기(전 한국전력 사장) 회장 시절 100명이 넘던 선수가 60여 명으로 급감했다. 그나마 2시간 10분 이내 기록이 가능한 남자 선수는 이봉주(삼성전자), 지영준(코오롱), 2시간 30분 이내로 뛰는 여자 선수는 이은정(삼성전자) 한 명뿐이다.

연맹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기대 이하다. 삼성 출신 집행부가 큰 그림을 그려 줄 생각은 하지 않고 ‘대회 때 왜 심판을 많이 써서 경비를 허비하느냐’고 따지는 수준의 근시안적인 행정을 하고 있다. 한국 육상 발전에 대한 장기 계획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올해 연맹 예산의 경우 44억 원 중 12억 원을 삼성이 대고 있다. 나머지는 용품업체 등 스폰서(10억 원)와 국고보조 대표팀 훈련비(22억 원). 이 돈으로 저변 확대 등 육상 발전을 위한 투자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육상연맹은 삼성 홍보실?=일본은 국내 마라톤 대회를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 선발전(남자=후쿠오카, 도쿄, 비와코, 여자=도쿄, 오사카, 나고야)으로 활용한다. 스타플레이어들이 국내에서 자주 뛰어야 꿈나무 선수는 물론 국민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 은근슬쩍 해외 대회에서 뛰어도 출전권을 주는 것으로 바꿨다. 이봉주는 이후 4년간 국내 대회에선 모습을 감췄다. 대신 2001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하는 등 각종 국제 대회를 섭렵했으니 삼성 홍보에는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삼성 한 팀의 선수 독식도 문제다. 이봉주 이은정은 다른 팀에서 키워 놓았던 선수. 코오롱으로 가기로 돼 있던 한 유망주가 갑자기 삼성전자로 간 적도 있다.

연맹은 또 서울국제마라톤이 있는데도 삼성과 연관이 있는 하프마라톤대회를 국제 대회 풀코스로 승격했다. 세계적으로 수도에는 1개의 국제 마라톤 대회만 있는 불문율이 깨진 첫 사례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