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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박수길/日, 비상임이사국 확대로 방향전환을

입력 | 2005-08-11 03:08:00


일본은 과거 10여 년간 중점 외교목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전략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이제 비상임이사국의 확대개편 쪽으로 전략을 바꾸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최선은 차선의 적(The best is the enemy of the good)’이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최선에 집착하다 보면 차선조차 놓친다는 뜻이다. 이 속담처럼 일본도 이제 차선의 길밖에 없음이 분명해졌다.

최근 긴급 정상회의를 열었던 아프리카연합(AU)이 일본 독일 브라질 인도 등 4개국 그룹(G4)과 단일안을 만들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인 미국과 중국의 반대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 회원국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아프리카와의 단일안 마련에 실패한 것도 물론 타격이 컸지만 “미국과 중국이 G4 국가의 안보리 확대 시도를 좌절시키기로 합의했다”는 왕광야(王光亞) 유엔주재 중국 대사의 최근 언론 발표는 미국과 중국의 반대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단적으로 표시했다.

일본은 안보리 진출을 위해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입해 전방위 외교를 전개해 왔다. 특히 올해 3월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 개혁에는 안보리 개혁이 필수적이므로 회원국들이 9월 유엔정상회의 이전에 여러 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결단을 촉구한 바 있으며, 상임이사국 간의 이해대립으로 인한 무력사용 기준의 자의적 적용으로 코소보·이라크 사태 등에서 유엔이 평화유지의 책임을 수행하지 못함에 따라 안보리 개편에 대한 국제여론이 확산되는 등 호조건이 펼쳐졌다.

또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보통국가로의 복귀와 국제적 역할 강화를 지지하는 일본 내 국민여론 등의 이유도 있었다.

안보리 개편을 위해서는 현재 G4, AU 그리고 한국 캐나다 등 중진국 12개국의 결의안 등 3개안이 계류돼 있다. G4 결의안과 AU 결의안은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을 동시에 증설한다는 기본 입장을 공유하고 있어 타협 가능성이 예견됐으나 AU 내 상임이사국 희망국 간의 갈등과 경쟁관계가 단일안에 대한 합의를 불가능하게 했다. 한편 상임이사국 증설에 반대하고, 연임 가능한 2년 임기의 10개 비상임이사국 증설을 주 내용으로 하는 12개국 안은 총회 채택을 위한 목적보다 G4안에 대한 견제적 성격이 강하다.

G4 그룹과 중진국 그룹의 첨예한 대립 속에서 상임이사국의 태도가 주목되고 있다. 현재까지 프랑스와 영국은 G4 결의안을 지지하고 있으나, 중국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고, 미국은 일본의 진출에는 찬성하나 독일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의 진출에 대해선 극히 부정적이다.

따라서 안보리 개편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현 상황하에서 일본은 실리와 명분 중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첫째는 기존 전략을 포기하고 타협안으로서 장핑 유엔총회 의장이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연임 가능한 10∼12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 증설 안을 선택하는 것이고, 둘째는 실현 가능성이 요원한 기존 전략에 계속 집착하는 길이다.

최근 일본은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비공식 접촉 등에서 이미 실리적인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음이 감지되고 있다. 일본은 이제 그들의 상임이사국 진출 전략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인정하고, 재임 가능한 비상임이사국의 증가만이 중요한 타협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이제 차선의 길밖에 없음이 분명해진 셈이다. 이러한 정책전환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과 동북아의 가까운 두 이웃을 대결의 장으로 몰아넣지 않는다는 면에서도 환영할 만하다.

한편 2년 임기의 비상임 10개국 증설 안을 주장해 온 한국이 새로운 사태전개에 대응해 5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 증설 안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아가 한국의 경우 10년 임기의 비상임이사국 안에도 지나치게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 인도 등과 함께 10년 임기의 비상임 이사국 지위에 도전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박수길 한국유엔협회 회장·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