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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야외문화재 보존… 솔로몬의 지혜는

입력 | 2005-08-10 03:07:00

유리 보호막 속에 들어 있는 서울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10층 석탑. 비바람과 비둘기 배설물 등으로 인한 훼손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탑의 숨결이 막히고 경관이 훼손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온화하고 해맑은 미소로 유명한 국보 84호 서산 마애삼존불(백제 6세기 말∼7세기 초·높이 280cm) 위에 씌워져 있는 목제 보호각이 올해 말까지 철거된다. 문화재청과 충남 서산시는 보호각의 벽체와 문을 없애고 지붕과 기둥만 남기기로 했다. 철거는 10월부터.

야외에서 비바람에 노출된 마애불의 훼손을 막기 위해 보호각을 설치한 것은 1974년. 이 보호각이 왜 31년 만에 철거되는 걸까. 야외 문화재 보존에 얽힌 딜레마를 살펴본다.

∇미소를 잃어버린 서산 마애삼존불=집 모양의 보호각을 만들어 마애불을 씌우고 난 뒤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내부에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해졌다. 조명을 설치했지만 서산 마애삼존불의 상징인 백제의 미소를 제대로 보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보호각과 암벽 접합 부위의 콘크리트가 빗물에 녹아내리면서 바위를 뿌옇게 변색시키는 백화 현상까지 생겼다.

상황이 악화되자 문화재청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철거를 결정했다. 실무를 맡은 서산시는 “벽과 문, 조명시설을 철거해 공기와 빛을 통하게 한 뒤 일정 기간 마애불의 상태를 지켜볼 것”이라며 “지붕과 기둥의 추가 철거 여부는 상황을 보아 가며 문화재청과 협의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유리 집에 갇힌 석탑의 슬픈 운명=보호각의 가장 극단적인 예는 서울 탑골공원의 국보 2호 원각사지 10층 석탑(조선 1467년·높이 12m)에 씌워져 있는 유리 보호각. 이 탑은 약하고 부드러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기본적으로 강도가 약한 데다 비바람과 비둘기 배설물 때문에 다른 탑에 비해 훼손이 심각했다. 결국 서울시는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2000년 유리로 탑을 완전히 덮어씌웠다.

당시 유리 보호각을 놓고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더 나은 대책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석탑은 야외에 노출된 상태로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인데 유리 막 속에 가두어 탑을 숨 막히게 만들어 버렸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보호각의 딜레마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다.

10년 동안의 해체 수리를 거쳐 9일 복원된 국보 86호 경천사 10층 석탑(고려 1348년·높이 13m)도 사정은 비슷하다. 훼손을 막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실내로 옮겨 놓았으니 이 탑 역시 햇빛을 잃고 온실에 갇히게 된 셈이다.

∇딜레마를 어떻게 풀까?=야외 문화재의 미적 가치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보호각을 설치하는 방안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서산 마애삼존불의 목제 보호각을 완전 철거할 경우, 경북 경주시 골굴암 마애불처럼 불상의 머리 위쪽에 아치형의 유리 막을 설치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현대적인 유리와 전통적인 석재의 조화를 통해 문화재 주변 경관을 새롭게 꾸며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어떤 대안을 놓고도 논란이 일겠지만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