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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공포 회오리]檢 “자백은 있는데 물증이…”

입력 | 2005-08-08 03:07:00

“도청 몰랐다” “국민 속이려 하나”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이 7일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원 재직 시 도청 사실을 몰랐다고 밝히고 있다(왼쪽). 이에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이날 서울 강서구 염창동 당사에서 “국민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했다. 김경제 기자


‘한 도둑이 수년간 물건을 훔쳤다고 범죄를 자백한다. 그러나 이 도둑은 훔친 물건을 모두 장물로 처리해 남은 게 없으며 범행 당시 사용했던 흉기도 모두 없앴다고 주장한다.’

검찰이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불법 감청(도청) 실태 등에 대해 전면 수사에 착수했지만 꼭 이런 입장에 처한 모양새가 돼 고민이 적지 않다.

국가정보원이 5일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도청을 했다”고 과거 범죄를 인정했지만 자세한 도청 실태나 결과 등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

국정원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죄는 지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물증은 없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에 따라 국정원 조사 결과를 넘겨받아 김영삼(金泳三)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벌어진 도청의 전모를 규명해야 하는 검찰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 발표는 화두만 던져 준 것”이라고 말했다.

물증이 없다면 관련자 진술이라도 확실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의 실체를 밝혀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 당사자들이 수사에 얼마나 협조할지도 미지수다.

1998년 5월부터 1년여간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낸 문희상(文喜相) 열린우리당 의장을 비롯해 당시 국정원의 주요 간부를 지낸 인사들은 벌써부터 도청과의 관련성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핵심 관련자들의 묵비권 행사도 수사의 걸림돌.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비밀도청조직 ‘미림팀’ 재건과 이후 활동에 깊이 관여한 배후 인물로 지목된 오정소(吳正昭) 전 안기부 1차장은 국정원 조사에서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말만 했을 뿐 윗선 보고라인 등에 대해서는 전혀 진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주변에서는 이런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국정원에 대한 전면적인 압수수색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그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실효성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내부 시설은 규모가 방대하고 복잡해 압수수색 대상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압수수색을 실시한다고 해도 국정원의 협조가 없으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

그러나 검찰은 “도청 수사는 원칙대로 밀고 갈 것”이라며 주말에도 수사팀 대부분이 출근한 가운데 수사 방향과 대상을 다시 검토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답’은 이미 나왔고 ‘문제풀이 과정’을 증명해야 하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떠안은 검찰이 국가 정보기관의 과거 도청 범죄를 어떻게 재구성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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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