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갈피 속의 오늘]1974년 키프로스 쿠데타

입력 | 2005-07-15 03:10:00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서는 순간 문득 느껴진 달콤한 향기에 한동안 두리번거려야 했다. 누군가 향수를 뿌렸나?

그것은 바람 속에 묻어온 야생의 꽃 냄새였다. 피부에 닿는 바람은 너무 부드러워서 비단결이었다. 온화한 기온에 맑은 공기,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피어 있는 꽃들, 끝없이 이어지는 올리브나무 숲과 친절하고 순박한 사람들.

몇 해 전 취재차 찾은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의 첫 인상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지중해의 동쪽에 자리 잡은 이 섬나라는 경기도보다 조금 작은 크기다.

그러나 이곳은 남쪽으로 그리스계 키프로스공화국, 북쪽은 터키계인 북키프로스공화국으로 나뉜, 지구상에서 가장 살벌한 분단지역 중 하나다.

작은 땅덩어리가 남북으로 나뉘어 있는 점은 우리와 같으나 인종과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는 우리보다 상황이 나쁜 셈이다.

본래 그리스계가 살았던 이 섬은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거치는 동안 터키인들의 이주가 시작돼 현재는 전체 인구 95만 명 중 그리스계가 80%, 나머지가 터키계다. 종교도 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로 나뉜다.

이 나라는 1960년 영국 식민지배에서 독립하면서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대통령은 그리스계, 부통령은 터키계에서 선출하도록 했고 내각과 의회도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7 대 3의 비율로 구성하도록 헌법으로 정했다.

비교적 원만한 출발이었다. 주민들은 이때까지만 해도 양측이 한 마을에서 살며 서로 교류했다고 전한다.

이 섬의 평화는 1974년 7월 15일 그리스계 군인들이 그리스와의 합병을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키자 끝나고 말았다. 터키계 주민의 반대는 당연한 일. 양측 간에 처절한 학살과 공격이 이어졌다.

터키는 터키계 주민 보호를 이유로 군대를 파병해 북쪽 40%의 땅을 차지했고 수년 뒤 북쪽은 독립을 선언해 버렸다.

현재 양측 모두 상대방이 저질렀던 학살과 탄압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통일이나 화합은 요원해 보인다.

키프로스의 쿠데타와 남북 분리는 소수 정치군인이나 교조주의자들의 탐욕이 국민 전체에 얼마나 큰 상처와 피해를 주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6·25전쟁이나 신군부의 쿠데타처럼.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