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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상영]386, 그 오만의 씨앗

입력 | 2005-07-12 03:06:00


총으로 정권을 장악한 군부독재정권에 정통성 결여는 치명적 아킬레스건이었다. 민주회복을 요구하는 비판세력은 끊임없이 이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이에 맞서 정권은 독재에 대한 저항을 이념으로 치환(置換)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민주화 요구 세력을 혁신으로 몰아 안정희구 세력을 자극하는 수법이었다.

사실 정통성 없는 군부정권의 독재는 이념의 문제라기보다는 옳고 그름의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곤 했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언론이 정권의 여론조작에 일조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제 반대 방향에서 비슷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음을 본다. 차마 봐주기조차 민망한 챙기기 인사, 편중 인사가 끊이지 않는다. 정책의 결과는 당초 의도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나타내기 일쑤다. 하지만 편중인사나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은 건강한 토론으로 승화되지 않고 개혁 대 반개혁의 구도로 치환돼 역공을 당한다.

정통성을 가진 현 정권은 떳떳하다. 그래서인지 명백한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국민의 지지를 받아 출범한 정권은 어떤 일을 해도 무오류(無誤謬)라고 믿는 오류에 빠진 걸까. 어두웠던 시절 민주 회복을 위해 싸운 사람들로 구성된 정권이 왜 이리 귀를 막고 있는 것일까.

불행의 씨앗은 도덕적 우월감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희생으로 나라와 사회를 변화시켰다는 자부심, 넘치는 정통성이 도덕적 우월감의 원천이다. 하지만 이 우월감이 권력에 취하면서 ‘나는 괜찮아’ 심지어 ‘국민이 이해해야 돼’라는 오만으로 변질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생각해 보자. 현재의 정권 담당자들에게 도덕적으로 열등감을 느낄 만한 세력은 이미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 남아 있다 해도 힘과 정치적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지금 정권이 상대해야 할 대다수 국민은 어려운 시절을 힘들게 살아왔거나 전혀 다른 세상을 자라온 미래 세대들이다.

미래 세대는 정권의 도덕적 우월감이나 열등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정권 담당자들의 우월감은 오만으로 비치며, 오만에 기반한 정책은 독선으로 보일 뿐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했다. 1970, 80년대 온갖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며 독재에 저항한 도덕적 우월감은 정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권을 잡은 뒤 어떤 일을 해도 국민이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하는 순간 도덕성은 사라지고 만다.

대통령 주위에 포진해 권력을 행사하는 386들도 어느덧 구세대가 되어 가고 있다. 과거에 매달려 고집과 아집을 버리지 못하면서 사고의 유연성과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잃었다는 뜻이다. 자신들이 그토록 미워해 온 기득권 세력이 된 것이다.

정권을 지지하건 안 하건 대통령이 비아냥거림을 듣고 정부가 불신을 받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반대파라고 해서 국민이 당선시킨 대통령을 무조건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쪽을 개혁저항세력으로 몰아세우면 국민을 두 동강 냈다는 사실만으로 그 정권은 실패한 정권이다.

권력에 몸담은 386세대도 나이를 먹는다.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그들도 권력의 단맛을 보며 변해 간다는 무서운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뿐이다.

김상영 경제부장 you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