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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권순활]‘不姙경제’ 뒤에 오는 것

입력 | 2005-06-30 03:14:00


독일 나치당은 1930년 9월 총선에서 대약진을 했다. 제국의회 의석을 12석에서 107석으로 늘리면서 제2당(黨)으로 떠올랐다. 이어 1932년 7월 230석의 1당이 됐고 반년 뒤인 다음 해 1월 히틀러를 총리로 하는 내각이 출범했다.

나치는 어떻게 단기간에 경이적인 성공을 거두었을까.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저자인 이스라엘 헤브루대의 로버트 위스트리치 석좌교수는 “1929년 대공황의 여파가 독일에도 미치기 시작하면서 이전까지 미미했던 나치의 선동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분석한다. 문학 철학 음악 등에서 많은 천재를 배출한 독일인들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 패배의 굴욕감에 극심한 불황까지 겹치자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택한 것이다.

경제난은 극좌세력의 발호를 불러오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부터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총성이 울린 곳은 유럽의 후진국이던 러시아였다. 차르 체제의 모순 위에 전쟁과 궁핍에 따른 불만이 거세지자 볼셰비키의 구호가 먹혀들었다.

한국 경제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얼마 전 한 토론회에서 “경제의 장기 추세선(線)을 분석할 때 현재 추세라면 이르면 5, 6년, 늦어도 10년 안에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0%로 떨어질 것”이라며 “우리 경제의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국부(國富)의 새로운 창출이 어려운 ‘불임(不姙) 경제’에 접어든다는 뜻이다. 잠재성장률은 1990년대 초의 약 8%에서 이미 반 토막에 가까운 4.5% 정도로 낮아졌다.

장기불황에 따른 사회적 병리(病理)와 갈등도 눈에 띈다. 생활고가 불러 온 자살이나 범죄는 이제 주요 뉴스로도 다뤄지지 않는다. 안정과 통합 대신 좌절과 분노, 증오가 두드러진다. 현대경제연구원 지적처럼 불안, 불확실, 불신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현실을 특징짓는 키워드가 됐다.

더 걱정되는 것은 ‘불임 경제’ 위에서 좌우(左右) 극단주의가 힘을 얻을 가능성이다.

얼마 전만 해도 전두환 정권에 대한 향수(鄕愁)가 나오는 것을 생각할 수나 있었던가. 아무리 현실이 갑갑하더라도 이건 가도 너무 갔다.

좌파적 시각에 입각해 희생양을 찾으려는 풍조도 불길한 징조다. ‘강남 사람들’과 대기업으로 대표되는 가진 자들에 대한 반감(反感) 확산이 대표적인 예다. 가난한 사람의 넋을 위로한다며 고급 아파트 주변에서 굿판을 벌이는 것을 진보로 착각하기도 한다. 일부 세력이 ‘정의로운 사회’라는 명분을 내걸고 계층 간 대립을 부추겨 정치적으로 악용할 수도 있다.

잘나가는 사람이나 집단이 잘못하면 문제점을 지적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 실패’에 따른 고통의 책임을 그들에게 돌리거나 ‘나눠 먹기 구호’가 힘을 얻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부(富)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공동체는 몰락의 길에 들어선다.

누구나 때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럴 때면 이런 조언을 떠올려 보자. “우리는 파이의 몫보다 파이의 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누리는 효용은 내가 내 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따라 결정돼야지, 내 이웃이 고급 승용차를 모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면 안 된다.”(찰스 윌런, ‘벌거벗은 경제학’)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