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私교육 대적할 ‘방과후 교육’…“학교가 학원이죠”

입력 | 2005-06-28 03:10:00

서울 인헌중은 영어회화 수학 등 학업과 특기적성 교육을 하는 ‘강감찬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강감찬 학교’의 개교를 축하합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인헌중 교문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다.

전산원에 세운 ‘강감찬 학교’에 들어서자 2, 3층은 영어체험마을로 꾸려져 있었다. 교실 입구마다 ‘뉴욕’ ‘토론토’ ‘시드니’ 등 세계 도시 이름을 문패로 달고 복도는 남태평양 바다의 요트, 서유럽의 거리 등 이국적 풍경들로 가득해 마치 외국에 와 있는 분위기였다.

“어떤 걸 살래(May I help you)?”

서울 반원초등학교에서는 재학생의 70% 이상이 클라리넷 등 특기적성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공책과 연필을 주세요(I want one note and two pencils).”

기초 영어회화 담당인 원어민 영어교사 크렉 틸그림(41) 씨가 상점에서 쓰는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강감찬 학교’는 5월 9일 인헌중이 문을 연 ‘방과 후 학교’로 월∼금요일 오후 2시 반부터 7시까지 영어 수학 국어(독서·논술) 등 학과 공부와 특기적성 수업을 진행한다.

이 학교는 방과 후 강좌가 80개나 되고 다른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도 참여할 수 있다. 수강생 312명 중 194명이 다른 학교 학생이다.

마을버스 2대가 하루 두 차례 인근 동네 곳곳을 돌며 학생들을 실어온다. 월 10만 원인 원어민 영어회화를 제외하면 수강료는 월 3만 원으로 학원보다 훨씬 싸다.

서울시교육청과 각 학교가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시범운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방과 후 교육이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교육의 질은 사교육… 수강료는 학원의 절반

서울 반원초등학교에서는 정규 수업이 끝나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와 수학 논술 등 학과 공부, 바이올린 첼로 등 특기적성 분야까지 35개 분야 206개 강좌가 열린다.

월 수강료는 평균 3만3000원이고 인원도 한 반에 10명을 넘지 않는다. 전교생 1900여 명 가운데 1700여 명이 2, 3개의 수업을 듣고 있다.

이 학교 구병주 교장은 “엄격한 기준으로 강사를 선발하고 학기마다 일주일 동안 전 과목에 대해 공개수업을 한다”며 “수강료는 학원의 절반이지만 질은 훨씬 낫다”고 말했다.

서울 석관고도 5월부터 방과 후 ‘스터디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상위권 학생 5∼7명씩을 한 팀으로 편성해 국어(논술), 영어, 수학 과목을 주1, 2회 강의하고 있다.

수학담당 박성순 교사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생 6명에게 시험범위에서 예상문제 10개를 낸 뒤 왜 예상문제로 뽑았는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도록 했다”며 “학생들이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범대와 교육대 재학생들도 ‘예비교사’로 방과후 교육에 동참하고 있다. 봉사도 하고 선생님 ‘연습’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서울 시내 초등학교 116곳, 중학교 29곳에서 서울교대 건국대 등 학생 150여 명이 주 1, 2시간씩 가르치고 있다.

○“분위기 좋고 믿을 만하다” 학부모 대환영

쌍둥이 형제인 임송현(14·인헌중 2학년) 군과 송원 군은 최근 영어학원을 그만두고 ‘강감찬 학교’의 영어회화교실로 옮겼다.

어머니 이상희(41·서울 관악구 봉천동) 씨는 “강남의 학원을 다닐 때는 그 지역 친구들과 분위기가 달라 소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며 “집 근처에서 믿을 만한 강좌가 열려 너무 반갑다”고 말했다.

석관고의 논술스터디그룹에 참여 중인 이진용(17·서울 성북구 장위동) 양은 “대학의 심층 논술에 나오는 글을 매주 읽으며 일반적 견해, 논거 등을 교사와 함께 토론하기 때문에 학원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반원초등학교가 방과 후 수업을 시작하기 전인 2003년 9월에 조사한 설문에선 학생 1인당 평균 사교육비가 평균 51만 원이었지만 1년 뒤 조사에서는 13만 원이었다.

인헌중 한창석 교장은 “사교육도 공교육 안으로 끌어들여 양질의 교육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이원휘 장학사는 “프로그램을 세분화하고 질도 높여 사교육과 차별화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며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에서 흡수하면 과도한 사교육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