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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연 의원 “불붙은 黨 전소시키고 다시 짓고 싶은 심정”

입력 | 2005-06-10 03:08:00

김동주 기자


“(열린우리당이라는) 집의 처마에 불이 붙었다. 내가 물이 돼 불을 확실하게 끄든지, 기름이 돼 전소시키든지 하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렸다. 오죽하면 차라리 전소시키고 다시 짓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했겠느냐.”

당 서열 2위의 상임중앙위원 직을 전격 사퇴한 열린우리당 염동연(廉東淵·사진) 의원을 9일 새벽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사퇴의 구체적인 이유와 심경을 들었다.

그는 “당의 통합을 바탕으로 정통 민주세력의 재결집을 이뤄내야 하는데 당내 일부 세력이 ‘이상주의’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유시민(柳時敏) 상임중앙위원 등 당내 개혁파와 그에 ‘동조’하는 지도부를 비판했다.

―차라리 집(당)이 전소돼 다시 짓는 게 낫다는 것은 열린우리당을 해체하자는 뜻인가.

“당 해체야…. 다만 그런 심정으로 전 당원이 대오각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탈당까지 검토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사퇴 발표 전에 보좌진에 내 심경을 전하며 기자회견문 준비를 시켰다. ‘사퇴할까, 그 정도 갖고 될까’라고 했더니 보좌진이 잘못 받아들여 탈당 가능성을 언급하는 초안도 하나 만들었다. 그게 와전된 것일 뿐 탈당은 언급한 적이 없다.”

―사퇴 이유를 놓고 갖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북 무주 워크숍(5월 31일∼6월 1일)이 끝난 뒤 유시민 의원과 단둘이 점심을 같이하면서 당의 진로 등을 얘기했다. 정치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선거를 통해 집권해야 개혁도 추진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당과의 통합 필요성을 거론했더니 유 의원은 ‘그러면 나는 당을 같이 못 한다’고 하더라. 정말 커다란 간극을 느꼈고 우리 당에 희망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타 상임중앙위원들과도 갈등이 있었나.

“4·30 재·보선 패배 후 당에 혁신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런데 혁신위의 멤버가 문제다. 한명숙 유시민 의원 등(이상주의 성향의 인사들)이 주도하게 돼 있다. 그게 혁신위 활동 방향을 말해 주는 것 아니냐. 사실 이 문제로 장영달(張永達) 상임중앙위원과 격하게 논쟁을 하기도 했다. 문희상 의장도 솔직히 문제가 있다. 상임중앙위에서 혁신위 구성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 자리에서 혁신위원장에 한 의원, 부위원장에 유 의원을 지명하더라. 어쨌든, 나로서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 의장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어쨌든 상황이 잘 수습돼서 문 의장이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기 바란다.”

―최근 청와대에 참여정부의 호남 역차별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전달했다고 하던데….

“호남 민심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지만 청와대도 정부도 당도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 호남이 이 정권을 만든 주체세력 아닌가. 온몸으로 밀어줬다. 그만큼 기대치도 있다. 그동안 호남 소외론 얘기하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 같아 말을 삼갔지만 호남인들은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다. 단적인 예로 청와대의 정무직을 제외한 비서관 49명 중에 광주 전남 출신은 2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역에서는 ‘도대체 이럴 수 있느냐’고 분개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에게 그런 얘기를 전한 적이 있다.”

―호남지역 일부 의원들이 탈당하는 상황으로 이어질까.

“직접 만나 탈당하고 민주당으로 가느냐고 물어보면 펄쩍 뛴다. 다만 지역 여론이 나빠 당에 잔류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는 많이 한다. 그래서 (지도부가) 설득하고 있다.”

―일각에서 사퇴 배경을 ‘사정설’과 연관지어 보는 시각도 있는데….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다. 한나라당도 그렇게 몰아가는 것 같은데, 정치적 결단을 그런 식으로 폄훼하지 마라.”

―백의종군하겠다고 했는데 향후 계획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피란 갔을 때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건조하며 차분하게 해전을 준비했다. 배를 건조하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생각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겠다.”

―노무현 대통령과 사전에 상의를 했는지.

“전혀 아니다. 사퇴를 전후해 전화 통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의 ‘대통령 측근 발호’ 경고 발언에 대하여 “경거망동하지 마라”고 반격한 것과 관련해 “이 총리를 국회에서 만나 ‘내가 좀 심했다’며 악수를 건넸다”면서도 “요즘 ‘실세’는 잃을 실(失)자 실세다.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사는데, 대체 무슨 일을 꾸미겠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염동연 의원은

1980년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청년조직인 ‘새시대새정치청년연합회(연청)’의 사무총장을 지낸 ‘범동교동계’ 출신이다. 2000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자문기구인 자치경영연구원의 사무총장을 맡아 ‘노 대통령 만들기’에 투신한 친노(親盧) 직계다. 지난해 17대 총선에서 광주 서갑에서 당선된 초선의원이다. 4월 열린우리당 지도부 경선에서 2위로 상임중앙위원에 당선됐다.

▼文의장 “심정은 이해하지만 섭섭하다”▼

“강개부사이 종용취의난(慷慨赴死易 從容就義難·분을 참지 못해 나아가 죽기는 쉬우나 조용히 뜻을 이루기는 어렵다).”

열린우리당 문희상의장은 9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염동연 의원이 전날 상임중앙위원 직을 전격 사퇴한 데 따른 소회를 이같이 토로했다.

문 의장이 인용한 문구는 중국 송나라 때 사방득(謝枋得)이 쓴 각빙서(각聘書)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문 의장은 “백의종군해서 위기 국면에 빠진 당과 정부, 노무현 대통령을 살리자는 염 의원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너무 섭섭하다”며 “때가 때인 만큼 참으로 난감하고 착잡하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냈다”고 말했다.

염 의원의 당직 사퇴로 당내 갈등이 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말이다. 당내 호남지역 의원들의 탈당설이 흘러나오면서 자신의 리더십 문제가 제기되는 데 대한 부담도 있는 듯했다.

그는 “4·30 재·보선 참패 후 지도부는 가시방석이었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던 자괴의 시간을 보냈다”며 “창당 정신에 맞는 당을 만들자고 ‘뉴 스타트’ 운동을 벌인 첫날 염 의원의 사퇴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것(당-정-청 단합)이 안 되면 모두 망할 판인데 다른 길이 있느냐”며 당의 단합을 거듭 강조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