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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박영석]탐험은 국력이다

입력 | 2005-05-28 03:10:00


히말라야 해발 8000m 이상 고봉 14좌, 세계 7대륙 최고봉, 여기에 북극점, 남극점에 지구 최고봉이란 상징성으로 제3의 극점으로 불리는 에베레스트(해발 8850m)까지 더한 지구 3극점.

내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1985년 청운의 꿈을 품고 해외원정을 시작한 지 만 20년 만에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인공위성자동위치측정시스템(GPS)을 들고 산악 그랜드슬램의 최종 목표인 북극점에 접근하는 순간, 머릿속에선 목숨을 잃을 뻔했던 고산 등반과 극지 원정의 아찔했던 기억들이 영화 필름이 돌아가는 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20년 동안 벌어진 일들이 내 앞에 펼쳐졌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GPS에 북위 90도 00.000분이라고 찍힌 순간, 가슴엔 벅찬 감동이 가득했지만 머릿속에선 ‘드디어 마지막 별을 땄다, 내가 해냈다. 한국인이 해냈다. 봐라, 한민족은 위대하고 저력 있는 민족이다’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훗날 세상 사람들이 산악 그랜드슬램을 제일 먼저 달성한 사람이 박영석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다. 다만 한국인이 이 일을 먼저 해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면 된다.

그동안 60차례가 넘게 해외원정을 다니면서 약소국 국민의 서러움을 톡톡히 당했다.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지위와 위신이 상당히 높아지긴 했지만 산악과 탐험계에서 한국은 변방 취급을 받아 왔다.

2001년 내가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달성했을 때 애써 외면하려 하던 세계 산악·탐험계가 이번에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자 어쩔 수 없었는지 비중 있게 다루었다. 대한민국이 드디어 산악·탐험계의 주류로 당당하게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나는 탐험은 국력이라고 생각한다. 또 세계의 역사를 탐험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서구 열강의 국력이 탐험으로 연결됐을 뿐 아니라, 거꾸로 탐험가들의 업적이 다시 국력으로 환원됐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 준다.

남극점에 장충체육관만 한 미국 기지가 있고 북극점 위로 여객기가 날아다니는 시대에 탐험을 국력과 연관시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탐험은 국민에게 희망과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정신적 풍요로움을 선사할 수 있기에 금전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국부일 수 있다.

2003년 북극점에 처음 도전했을 때 53일 만에 북극의 얼음이 녹아 더는 곤란하다며 원정대행사가 원정대를 헬기로 강제로 끌고 나오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영국인 팬 하도는 우리 원정대가 철수당한 지 25일이 지나서 북극점에 섰다.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치를 떨었다. 알고 보니 영국 정부가 나서 탐험을 계속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들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고 지켜본 덕택이었단다. 부러웠다.

세계에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오른 산악인은 모두 12명이다.

한국은 자랑스럽게도 12명의 완등자 중에 나를 포함해 3명이나 되는 최다 배출 국가이다. 남북한 합쳐 해발 3000m가 넘는 산이 하나도 없는 국가로서는 기적 같은 일이다. 더구나 산악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미천한 가운데 이루어 낸 것이라 더욱 값지다.

한국에서 전문 산악인, 탐험가가 된다는 것은 무척 어렵다. 등반 능력이 뛰어나도 경제 여건 때문에 포기하는 동료나 선후배를 수없이 보아 왔다. 원정을 떠날 때마다 공항에까지 나와 부러운 눈길로 배웅하는 그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나라를 빛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도 있고 황우석 교수처럼 과학적 성과를 보일 수도 있다.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의 고산 정상에 태극기를 꽂는 산악인들에게도 국가적으로 관심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는 외국 탐험가의 전기를 읽으며 세상을 헤쳐 나갈 꿈과 희망을 키웠지만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한국인 탐험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큰 꿈을 키워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박영석 산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