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위당 정인보作‘양명학 연론’국학진흥원 현대문장으로 출간

입력 | 2005-05-03 18:50:00


한국 양명학(陽明學)의 기념비적 연구서로 꼽히는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1892∼1950·사진)의 ‘양명학 연론(演論)’이 현대적 언어로 재탄생했다.

1933년 동아일보에 총 66회에 걸쳐 연재된 ‘양명학 연론’은 성리학의 나라로만 알려진 조선의 양명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연구다. 중국 명대 왕수인(王守仁·1472∼1528)이 창시한 양명학은 성리학의 경전해석 중심의 학문을 비판하면서 내면의 깨달음(良知)을 앞세웠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단계적으로 이해한 성리학과 달리 양명학은 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했다.

이런 양명학은 중국과 일본에서 성리학의 대체 이데올로기로 발전했으나 조선에서는 이단으로 계속 배척됐다. 조선 양명학의 태두로 꼽히는 정제두(鄭齊斗·1649∼1736)와 그가 이끈 강화(江華)학파는 초야에 묻힌 소수의 비주류 지식인 집단이었다.

위당은 바로 그 강화학파의 마지막 계승자였고, ‘양명학 연론’은 한국 양명학의 발전과정을 객관적 학술체계로 기술한 최초의 연구저술이었다. 위당은 양명학 연론에서 조선역사가 ‘텅 빔’과 ‘거짓’으로 가득 찬 역사가 된 것은 주자학의 폐단이라고 비판하면서 양명학의 실심(實心)과 실행(實行)을 그 극복 대안으로 제시했다. 1999년 서평전문지 ‘출판저널’이 국내 각 분야 100명의 지식인에게 ‘21세기에도 남을 20세기 한국고전’을 물은 결과 ‘양명학 연론’이 20세기 초의 대표 고전으로 뽑혔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신문지상에 발표된 ‘양명학 연론’은 1972년 삼성문화재단의 문고판, 1983년 ‘담원 정인보전집’(연세대출판부)의 일부로 두 차례 출판됐다. 그러나 맞춤법과 띄어쓰기만 현대에 맞게 고친 탓에 현대인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근현대국학자료 총서로 새로 출간한 ‘양명학 연론’(홍원식·이상호 옮김)은 원문을 현대문으로 풀어쓰고, 원문에 없는 출전을 일일이 확인해 각주(脚註)를 달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