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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五.밀물과 썰물

입력 | 2005-04-17 18:50:00

그림 박순철


“그런 일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 대왕께서 이것저것 살피시고 헤아리시느라 조금 늦어질 뿐입니다.”

동향(同鄕)의 정 때문일까, 구강(九江) 태재가 별로 감추는 기색 없이 그렇게 받았다. 수하가 그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듯 말했다.

“이것저것 살피고 헤아리셔야 한다면, 초나라의 사자도 와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패왕도 참을성을 많이 키운 듯 합니다만, 그래도 재촉이 심하지요?”

“그건 잘 알 수 없습니다만 벌써 여러 날 전에 와서 우리 대왕의 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태재는 굳이 감추려 들지 않고 아는 대로 일러주었다. 어쩌면 아낌없이 뿌린 금은이 그렇게 효험을 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자 수하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저와 같은 땅에서 나고 자란 정에 의지해 묻고자 합니다. 태재께서는 진실로 이 회남(淮南) 땅과 여기 사는 백성들을 살리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 곧 자신의 안위를 묻지 않고 구강왕께 나아가 제가 아뢰고자 하는 말을 그대로 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우리 대왕을 임금으로 모시며 그 봉록으로 산지 오래됩니다. 또 회남 땅은 내 고향이요 그 백성들은 모두가 내 부모형제나 다름없습니다. 거기다가 회남 땅과 그 백성들을 위한 일이라면 또한 우리 대왕을 위한 일이기도 하니, 그런 일이 있다면 어찌 내 한 몸을 걱정해 나서기를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태재도 정색을 하고 대꾸했다. 수하가 목청을 가다듬어 진작부터 별러온 말을 했다.

“구강왕께서 저를 만나주시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초나라는 강하고 우리 한나라는 약하다고 여기신 까닭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번에 사자로 온 것은 바로 그런 대왕의 헤아림이 옳지 않음을 밝히려 함이니, 바라건대 태재께서는 힘써 아뢰시어 제가 대왕을 뵈올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만약 제가 드리는 말씀이 옳다면, 이는 대왕께서 듣고 싶어 하시는 바로서, 이 회남 땅과 사람을 위해 그대로 따라주시면 될 것입니다. 하오나 제가 드리는 말씀이 그릇되었다면, 저뿐만 아니라 저를 따라온 스무 명까지 모두 구강 저잣거리로 끌어내 그 목을 쇠 모탕에 얹고 도끼로 잘라도(斧質)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리하시면 대왕께서는 한나라와 등지고 초나라를 섬기겠다는 뜻을 천하에 밝히는 셈이라, 패왕에게 구구하게 변명을 늘어놓지 않아도 되니 그 또한 다행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뜻이 비장해서인지 태재가 숙연하게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들으니, 자기 임금을 향한 공의 충성뿐만 아니라 우리 구강을 위한 충정도 믿지 않을 수 없구려. 내 내일 우리 대왕을 뵙는 대로 공의 뜻을 전해 올리겠소.”

그렇게 말하고는 몇 순배 흥겹게 술잔을 돌리다가 자리를 파하였다.

다음 날 입궐한 태재가 저희 왕 경포를 찾아보고 간밤 수하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때까지도 갈피를 잡지 못해 하던 경포는 태재가 전해 준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한나라의 사자를 만나볼 마음이 생겼다. 곧 사람을 태재의 집으로 보내 수하를 궁궐로 불러들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