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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선들의 의정 1년 비망록]민주노동당 노회찬

입력 | 2005-04-15 18:40:00

김동주 기자


민주노동당 노회찬(魯會燦) 의원은 ‘말의 정치인’이다. “50년 동안 삼겹살을 같은 불판 위에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맣게 타버린다. 이제 불판을 바꿀 때가 됐다”는 ‘불판 교체론’ 등 노 의원이 남긴 말은 그를 초선 가운데 가장 대중성 강한 의원 중 한 명으로 키웠다.

그런 노 의원이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가장 아쉬운 대목이 ‘말’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당선된 지 얼마 안 돼 한 일간지에서 ‘취중(醉中)방담’ 자리를 만들었다. 그때 유명 정치인의 단점을 꼬집어 말하는 인물평을 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모 젊은 의원에 대해서는 ‘오렌지족’이라고 했다. 뼈아프게 후회하는 대목이다.”

노 의원은 “당시 해당 의원들에게 사과를 했다”면서 “공인으로서 농담과 공적인 말을 구분해야 하는데, 내 말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사려 깊지 못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영등포의 영세민촌에 갔다. 정말 어려운 분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감정이 북받쳐 ‘이런 어려움을 낳은 제도적 상황을 내가 다 해결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막상 그곳을 나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재야단체에 있을 때와는 달리 국회의원은 말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게 노 의원의 뼈아픈 자성(自省)이다. “현실정치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는 게 그의 솔직한 고백.

“의원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연판장 같은 게 돌았다. 그냥 사인만 하면 된다고 해서 해줬더니 여야 의원 200여 명 이름으로 호남고속철도 사업을 조기 추진하는 법안이 튀어 나왔다. 다들 자기 돈 나가는 거 아니고, 괜히 지역에서 찍힐 이유가 없으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이름만 올린 것이다.”

노 의원은 발의는 함께했지만 막대한 예산을 생각해 표결할 때는 반대표를 던졌다고 했다. 그는 특유의 입담으로 “감옥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지만, 범행 현장에 있으면 불편하다”고 당시의 복잡한 심사를 털어놓았다.

재야에서 국회로 입성한 처지 때문에 불필요한 소모전이 벌어져 의정활동에 전력투구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고 했다. “시민단체나 노동운동단체에서 결함을 가진 법안을 발의해 달라고 떼를 써 곤란할 때가 많다. 거절하면 그냥 발의만이라도 해 달라고 한다.”

그는 이들 단체 내에서 법안을 제출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평가를 받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매긴 의정활동 1년 성적표는 평균점에 미달하는 ‘C+’. 노 의원은 “2년차에는 최소한 이보다는 더 나은 점수를 받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노회찬 의원은▼

민주노동당 비례대표(49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늦깎이 입학한 뒤 학생운동을 하다 노동현장에 투신했다. 진보정당추진위 대표도 맡았다. ‘노회찬 어록(語錄)’이 인터넷에 회자될 정도로 톡톡 튀는 감각을 지녔다는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