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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화상(畵像) 회의

입력 | 2005-03-07 18:03:00


“한국과 재외 공관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졌으니 부대원들도 영외 활동을 줄이라.”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군 자이툰부대 지휘관들이 지난해 10월 서울의 합참의장과 화상회의를 하는 모습이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화상회의가 현실이 되다니, 세상 참 좋아졌다. 시장조사기관인 와인하우스에 따르면 2001년 세계적으로 50%가 넘던 대면회의가 2004년엔 40%대로 줄어든 반면 화상회의는 20%로 늘었다. 시간과 비용의 절감이 가장 큰 효과다. 하지만 와인하우스는 덧붙였다. “화상회의는 악수를 한 뒤 두 번째 미팅으로 안성맞춤이다.”

▷인간심리에 정통한 사람들이 화상회의에 회의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공식 석상에선 점잖은 발언만 나오지만 솔직한 ‘뒷담화’는 회의장을 나서며 시작된다. 비디오가 보여 주지 못하는 표정이나 분위기의 정보량도 만만찮다. 그래서 조직심리학자인 나이절 니컬슨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얼굴 보며 얘기하고 한자리에 모이려는 게 인간 본능”이라며 아무리 재택 근무제를 채택한대도 대면회의와 기존 사무실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테크놀로지가 거리(距離)를 없앤다지만 역설적이게도 지리적 중요성은 커지는 추세다. 미국에선 실리콘밸리에 이어 ‘바이오테크비치’가 뜬다. 샌디에이고 중심의 산학(産學) 클러스터다. 국내에서도 삼성 포스코 등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된 11개 회사 중 절반 이상의 본사가 강남에 몰린다. 효율성이 높아져서다. 정보가 쓸데없이 넘쳐 날수록 내부자 정보나 연줄, 네트워킹, 살가운 접촉의 값은 치솟는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화상회의가 열린 건 딱 두 번이라고 한다. DJ정부가 83억 원을 들여 화상회의 시스템을 갖춘 걸 생각하면 세금이 아깝지만, 효율성으로 보면 두 번밖에 안 열려 다행이다 싶다. 문제는 충남 연기-공주 지역에 짓는다는 행정도시 이후다. 화상회의 활성화로 행정 효율을 높이겠다고 하지만 그 생각이야말로 재검토하는 게 좋겠다. 테크놀로지보다는 사람 훈김이 한 수 위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