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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주식시장(ECN) 왜 실패했나…투자자들 외면

입력 | 2005-03-04 18:03:00


“수요를 철저하게 분석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지요.”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증권업협회에서 이색 강연회가 열렸다.

증권업협회가 제3시장 육성방안을 만들면서 야간 주식시장인 장외전자거래시장(ECN)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한국ECN증권 사장을 지냈던 이정범(李正範) 씨가 강사로 나섰다. 그는 준비한 보고서 ‘신(新)시장 구조분석’을 “일종의 반성문”이라고 했다.

올해 들어 증시가 활황세를 보이고 있지만 ECN은 거래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시장을 운영하는 ECN증권은 지난달 말 임시 주주총회에서 출범 3년 6개월여 만인 5월 28일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야간 주식시장은 왜 실패했을까.

▽수요를 창출한다?=ECN증권은 2001년 12월 영업을 시작했다. 32개 증권사는 256억 원을 공동 출자했다. 거래시간은 오후 4시 반∼9시로 ‘밤에도 주식을 사고 팔 수 있는 시장’이라는 표어가 ECN증권을 장식했다.

그러나 투자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야간 증시가 흑자를 내려면 하루 거래대금이 1200억 원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거래대금은 평균 30억 원에 그쳐 ECN증권의 누적적자는 현재 130억 원에 이른다.

이 씨는 “수요가 없는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렵다”며 “개인이나 기관투자가의 수요를 철저히 예측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활황에는 열등재도 잘 팔린다?=야간 증시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된 것은 ‘코스닥 열풍’이 불던 2000년 초.

재정경제부는 증권시장 개방과 제도 개혁을 내세워 이듬해 초 증권거래법을 개정해 야간 증시의 설립 근거를 만들었다.

그러나 ECN은 출발부터 가격 결정 기능이 없는 반쪽짜리 시장이었다. 정규 거래시장(오전 9시∼오후 3시)의 종가대로만 거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6월부터 가격변동 폭(±5%)을 뒀지만 30분 단위로만 거래돼 투자자의 외면을 받았다.

이 씨는 “실시간 매매에 익숙한 개인투자자들은 30분을 기다리지 못한다”며 “투자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열등재와 열등서비스를 가려내는 ‘혜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제도는 개선할 수 있다?=ECN증권은 실시간 매매방식을 허용해 달라고 재경부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씨는 “2년 전 정부는 ECN 활성화를 사실상 포기하고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의 통합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며 “제도 개선이 어려운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증권선물거래소는 ECN증권이 영업을 정지하면 시간외매매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ECN의 기능을 흡수할 계획이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