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따뜻한 분위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음력 새해 벽두에 북한이 전격적으로 핵 보유와 6자회담의 참가 거부를 선언했다. 관련 당사국들이 북한 핵문제를 협상으로 풀어 보려고 암중모색하고 있는 와중에 북한은 다시 한번 핵문제를 대결의 장(場)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작년 3차 6자회담을 끝으로 8개월여 만에 당사국들 간에 의미 있는 막후접촉이 막 시동되는 때였다. 관련국 사이에 다소 차이는 있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협상론 쪽에 있었고,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고위 정책결정자들도 하나같이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공언하고 있던 참이다. 그러나 북한에 넘긴 공은 예상외로, 너무 빨리 그리고 실망스럽게도 이와 같은 초강경 대응으로 넘어 온 것이다. 이제 북한 핵문제에 대한 비관론은 급속히 확산될 것이고 국제사회는 앞으로 또다시 인내심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북한이 던진 선언은 모두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핵무기의 보유와 계속 증강(增强) 선언은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북한의 이번 선언으로 국제사회는 북한 핵을 기정사실화하느냐 아니냐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북한도 핵문제의 ‘동결’ 같은 대안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도록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것이다.
▼‘벼랑 끝 전술’의 마지막 카드▼
북한이 핵문제에 대한 선택은 실질적으로 세 가지 길이 있었다. 첫째는 완전한 핵 포기, 둘째는 ‘핵 모호성’의 계속 유지, 셋째는 핵 보유 선언 등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선택 방안 중 핵 모호성의 유지는 현상유지적 성격이 있고, 완전한 포기는 전향적인 방안이며, 핵 보유의 선언은 초강경 대응을 의미했다.
6자회담의 와중에는 북한이 핵 모호성의 유지를 계속해서 선택방안으로 삼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세 방안 중 북한에 실현성과 이상(理想)의 목적을 함께 충족시키는 방안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북한에는 완전한 핵 포기만은 어떡하든 피해야 할 대안으로 핵 보유의 공식선언은 6자회담 참여국들의 엄청난 반발과 제재가 뒤따를 것을 감수해야 하는 대안이었다. 따라서 일반적인 예상은 북한이 적어도 한두 번 정도는 더 6자회담에 나서면서 갈 길을 탐색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선언은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진로를 180도 유턴한 것이다. 북한은 핵 보유의 공식 선언으로 ‘벼랑 끝 전술’의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소위 ‘레드라인(red line)’을 막 넘어가는 순간이다. 북한은 수세적 대응보다 공세적 대응이 과거로 보아서 이러한 난국 타개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북한은 대외 환경도 악화되었고 앞으로 잘 풀릴 전망도 당분간 없다고 본 것이다. 기대를 걸었던 일본과의 관계는 가짜 유골 사태로 지금 최악이다. 중국이 현재까지는 북한 정권의 안정화와 북한의 비핵화의 양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으나 점차 이 두 목적이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렇다면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국면 전환을 노리는 강수를 ‘늦기 전에’ 써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정부, 분명한 원칙 표명해야▼
이제 북한의 핵 보유는 현실이 되었다. 이런 사태에 직면해 우리 정부는 분명한 태도로 몇 가지 사항을 원칙적으로 표명해야 한다. 첫째, 지금과 같은 사태의 악화는 전적으로 북한의 책임임을 밝히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그간 노력해 온 남북대화와 대북 경제협력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것이었다. 더구나 6자회담을 통한 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한국을 포함한 다자가 물밑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와중에 나온 북한의 선언은 이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둘째, 북한의 비핵화는 포기할 수 없는 목표임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미일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를 포함해 5개 당사국이 시급히 난국 타결을 위한 모색에 나서야 한다. 셋째, 향후 대처 방안을 놓고 국내적 합의 도출을 위한 초당적 노력을 시급히 경주해야 할 것이다.
현인택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국제정치학 ithyun@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