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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황호택]天安門의 봄

입력 | 2005-01-20 18:19:00


1989년 6월 중국은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청년들을 유혈 진압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중적 인기가 높던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가 죽자 그를 애도하던 군중이 시위대로 바뀌면서 인민의 군대가 인민을 향해 총질을 하는 사태로 악화됐다.

당시 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趙紫陽)은 톈안먼 시위의 강경 진압에 반대하다가 숙청돼 국내외에서 중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15년 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자오쯔양이 사망한 직후 그의 딸은 “아버지가 마침내 자유로워졌어요”라고 말했다. 자오쯔양의 장례는 후야오방과는 달리 가족장으로 단출하게 치러지기 때문에 대규모 시위를 촉발할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

자오쯔양의 죽음을 계기로 12억 경제대국의 미래를 진단하는 기사와 칼럼이 세계 신문에 넘쳐나지만 정작 중국 신문들은 그의 사망 기사를 단 한 문장으로 처리했다. 총리와 총서기 경력도 소개하지 않고 ‘동지’라는 호칭을 썼다.

대학 인터넷 게시판에는 자오쯔양을 애도하는 글이 수백 수천 개씩 뜨고 있다. 댓글이 뜨기가 바쁘게 검열관이 잽싸게 지워 버리지만. 중국 ‘인민일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우리는 누가 죽었을 때 슬퍼할 수도 없습니까?”라는 글이 떠 있다고 한다. 누구를 애도하는 글인지 알 수 없어 지우지 않은 모양이다.

중국은 외국 대사관에 들어가는 신문에서도 자오쯔양 기사가 실린 면을 통째로 찢어 내는 외교적 무례를 저질렀다. 중국의 경제가 한국을 무섭게 쫓아오고 있지만 정치는 아직 30년 전 한국 수준이다. 유신체제와 5공화국 초기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보도한 외국 신문은 기사를 먹으로 지우거나 가위로 오려내고 배포됐다. 그래도 외국 공관에 들어가는 신문은 찢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보다 20년 늦다. 1987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전두환 정권이 광주나 톈안먼에서처럼 군대를 앞세우고 싹쓸이를 하지 못한 것은 다음 해로 다가온 88올림픽이라는 국가대사를 망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그럴듯하다. 3년 뒤에 치러지는 베이징 올림픽도 중국의 민주화에 어떤 형태로든 기여할 것으로 내다보는 중국 전문가들이 있다.

중국인의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백화점에서 텔레비전을 고르듯이 정치지도자를 선택하고 싶은 욕망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욕망이 어떤 계기를 맞아 다시 분출하더라도 2008년 국가대사를 앞둔 중국이 1989년처럼 유혈진압에 나서지 않고 한국과 같이 대타협의 길을 걸으리라는 관측이 있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두꺼운 얼음장을 녹이고 톈안먼에도 봄이 올 것이다. 중국의 민주화는 아시아에 격동을 몰고 오면서 북한의 정치체제에도 곧바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신문을 아무리 지우고 찢어도 민주화라는 큰 흐름을 막지 못함을 한국이 먼저 보여 주었다. 베이징 올림픽은 20년 늦었지만 중국의 민주화는 한국에 몇 년 뒤질지 궁금하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