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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플리바기닝' 도입 배경과 전망

입력 | 2005-01-16 17:11:00


검찰이 도입을 검토 중인 플리바기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도)과 면책조건부 증언취득제도(Immunity)는 검찰의 수사관행에 큰 변화를 불러올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제도 도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아 향후 추진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검토 배경=법원이 법정에서 나온 진술과 증거를 토대로 사건을 심리하는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있는데다, 검찰조서도 법정에서 피고인이 부인하면 그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례가 직접적인 배경이 됐다.

실제로 직접증거 확보가 어려운 뇌물 사건 등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밤샘조사의 원칙적 금지, 변호인의 수사과정 참여기회 확대 등 수사관행이 대폭 바뀌면서 피의자로부터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뇌물 등 당사자 진술 외에 뚜렷한 물적 증거를 찾기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해석된다.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이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첨단 수사기법의 개발 등을 통해 변화된 수사 환경에 대처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한편 플리바기닝 등의 검토를 직접 언급한 것도 뇌물사건 수사의 현실적 어려움을 반영한다.

▽도입되면 어떻게 되나=플리바기닝 제도가 도입되면 검찰은 자백사건과 부인사건으로 구분해 형사사건을 처리할 방침이다. 자백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하는 한편, 부인사건은 수사를 위한 충분한 시간과 절차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검찰은 기대하고 있다.

면책조건부 증언취득제도가 도입되면 검사는 의혹만 있는 뇌물수수나 마약거래, 폭력조직 사건 등을 수사할 때 수사대상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증언을 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 제도가 도입되면 검찰의 독단적, 편의적 수사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피의자나 증인의 진술 취득과정에서 법관의 확인 등 정형화된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감시 및 견제 장치를 갖춘다는 방침이다.

▽전망=미국의 플리바기닝은 용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면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가벼운 형량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약속하거나, 다른 혐의에 대해 불기소 또는 공소취소를 약속하는 등 세 가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미법 체계의 국가에서 시작된 플리바기닝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우리나라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 내부에선 제도도입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2004년 7월 각계 전문가가 참여해 출범한 대검찰청 산하 '인권존중을 위한 수사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 자백을 강요하는 수사관행을 고치기 위한 대안으로 이 제도 도입이 권고됐던 점도 낙관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미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관행적으로 플리바기닝이 시행되고 있는 만큼 법제화가 어렵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2003년 권노갑(權魯甲), 박지원(朴智元) 씨의 현대그룹 비자금 수수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두 사람과 현대그룹의 '중개인'으로 외국에 도피 중인 김영완(金永浣) 씨측에게 "자진 귀국해 수사에 협조할 경우 불구속 수사도 검토할 수 있다"며 일종의 플리바기닝을 시도했다.

그러나 김주덕(金周德) 변호사는 "범죄에 대한 철저한 증거수집을 통해 범죄를 입증하고 상응한 처벌을 해야 할 검찰이 범죄자와 협상해 형을 깎아주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이나 정의 관념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 척결이란 검찰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다"고 비판했다.

또 검찰 수사 단계에서 이미 범죄인의 형량이 정해지는 구조는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도록 한 우리나라 형사 사법 체계와는 일정부분 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아 도입 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디지털뉴스팀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