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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강원택]軍비밀주의 정보왜곡 낳는다

입력 | 2005-01-13 18:09:00


문외한인 나로서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가운데 하나가 초정밀 위성 카메라이다. 얼마 전 남아시아 해일을 촬영한 위성사진도 그렇고 그 이전 북한 용천 폭파 현장 건도 멀리 떨어진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식별이 가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600km 상공에서 지상의 차량을 식별할 정도로 정밀한 위성 카메라를 도입하게 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말 감추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연말이나 명절 무렵이면 각계 지도층 인사들이 군 부대를 방문하여 장병을 격려하는 모습이 지면을 장식하곤 한다. 언론에 ‘OO부대’로 소개되는 곳이다. 그런데 솔직히 갖게 되는 궁금증은 저 높은 상공의 인공위성에서 자동차 번호판의 식별까지 가능한 오늘날 과연 ‘OO부대’라고 표현하면 북한이나 가상 적이 우리 군 부대 위치를 정말 모를까 하는 점이다. 주한미군 TV 채널에서 캠프 케이시니 캠프 험프리니 하며 ‘겁 없이’ 군 부대 명칭을 거명할 때에도 비슷한 혼란이 생겨나곤 한다.

작년 말 국방부는 군사 외교 대북관계의 국가기밀 사항에 대해 국회에 자료 제출은 물론 대면(對面) 설명까지 거부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한 사실이 밝혀졌다. 작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비밀로 규정된 사항을 일부 의원들이 유출한 데 따른 대응 조치로 보인다.

물론 기밀로 되어 있는 사안을 공개적으로 밝힌 박진 의원이나 노회찬 의원의 처신은 책임 있는 공인으로서 적절한 행동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를 빌미로 군사 외교 대북 관계에 관한 중요 정보를 국회에 제공하지 않겠다고 한 국방부의 태도는 더욱 심각한 문제다.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논의되어야 할 사항은 국방부의 지나친 비밀주의가 아닐까 싶다. 국방 분야의 정보는 다른 사안에 비해 일반 국민의 접근이 어렵고 또 실제로 감춰야 할 부분도 많을 것이다.

특히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현실에서 군 기밀의 유지는 국가 안보와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수백 km 떨어진 상공에서 사진을 찍고 통화 내역을 감지할 수 있는 오늘날 과거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불필요한 사안까지 기밀로 유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일부 의원의 행동을 빌미로, 시쳇말로 ‘딱 걸렸어’하는 식으로 정보 제공을 거부하려는 국방부의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

행정부의 비대화와 전문화 추세가 계속되면서 이를 견제해야 하는 의회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것이 많은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과거 군사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와 반공이데올로기의 유산으로 군사 안보 관련 정보는 사실상 정부가 독점하고 국회는 그저 변죽만 울릴 수밖에 없었다. 북한 등 가상 적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국내용’ 기밀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화 이후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특히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는 국민의 참여와 정보의 개방이 중요한 정책적 기조가 되고 있지만 이번 국방부의 규정 개정은 이런 기조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안보의 핵심은 국민적 지지와 합의이다. 모든 것을 감추고 그저 따라오라는 식의 정책 발상은 민주화와 과학기술 시대에 걸맞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것은 기밀을 무조건 숨기고 공개를 거부하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기밀을 줄이고 국민이 마땅히 알아야 할 권리를 충족시켜 주는 일이다.

강원택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