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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분권정책 현주소]권한·재정 이양 얼마나

입력 | 2004-12-13 17:59:00


《권한과 재원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분권화 과제의 양대 축이다.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권한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권한 없는 예산은 ‘그림의 떡’이기 때문이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의 47개 분권화 과제 중 절반이 넘는 24개가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 및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확보와 연관된 것일 만큼 분권위도 이를 중시하고 있다.》

▽중앙 권한의 지방 이양=“아니 이런 것도 행정자치부 장관의 승인 사항인가요.”

서울의 한 자치단체 분권담당 직원은 지난달 초 정부가 지방에 이양하기로 한 중앙 행정부처의 권한을 살펴보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정경제부 등 13개 중앙 부처가 1년간의 논의를 거쳐 지방으로 넘겨주기로 한 권한 속에는 △읍면동의 명칭 변경 승인권과 지역 민방위대 동원령 발령권(행정자치부 장관) △환경관리인 교육비 징수권(환경부 장관) △과태료 부과 및 징수권(문화관광부 장관) 등 당연히 일선 지자체의 권한이라고 생각해 온 사소한 권한들이 줄줄이 나열돼 있었다.

“이런 것을 주면서 무슨 대단한 권한을 넘겨주는 것처럼 생색내다니….”

행정사무의 처리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이냐의 기본원칙은 주민과 더욱더 가까이에 있는 곳에 사무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시군구에 모든 사무를 맡기되 구역이 좁거나 재원이 없어 불가능할 경우 시도가 나서고 시도조차 힘들 경우 국가가 맡는 게 지방자치의 원칙이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지방자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이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런 원칙과 판이하게 다르다. 웬만한 권한과 사무는 모두 중앙 행정부처가 갖고 있다.

2002년 현재 정부의 사무는 총 4만1603개(행정자치부 통계). 이 가운데 75.8%인 3만1551개가 국가사무이고 나머지 1만52개가 지자체의 자치사무다. 다만 국가사무 중 1311개(전체의 3.1%)는 국가가 지자체에 위임해 처리하고 있다. 일본 등 선진국의 자치사무는 보통 30%가 넘는다.

분권위 역시 이런 현실을 감안해 지난해 7월 단계별 이행안(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중앙정부의 권한 가운데 지방으로 넘겨줄 수 있는 권한은 과감하게 넘기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르면 분권위는 올해 말까지 1차 일괄이양법을 제정해 227개의 중앙 사무를 지방으로 넘기고 2005년과 2006년에도 2, 3차 일괄이양법을 만들어 추가로 사무를 이양해야 한다.

그러나 중앙 권한의 지방 이양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다. 행자부 산하 지방분권지원단이 10월 국회에 제출했던 1차 일괄이양법은 국회가 개별 처리키로 함에 따라 일괄처리가 불가능해졌다. 정부는 부랴부랴 의원입법 형식으로 227개 사무와 관련된 49개 법안을 하나하나 국회에 다시 제출했지만 연내에 모두 마무리될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박재영(朴在泳) 분권위 지방분권팀장은 “비록 일괄처리가 무산되긴 했지만 각 부처가 이미 이양키로 동의한 사무들인 만큼 이양 일정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분권=올해 예상되는 조세 수입 총액은 154조520억 원. 이 가운데 지방세는 31조9834억 원으로 전체의 20.8%에 불과하다. 그러나 31조여 원만으로 지자체의 예산을 짜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중앙정부는 매년 지방교부세와 국고보조금, 지방양여금 등의 명목으로 지자체에 예산을 지원해준다. 실제로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집행하는 예산 규모는 대략 49 대 51 정도.

그러나 이는 지방자치가 발달한 나라들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 일본은 중앙과 지방의 예산비율이 37 대 63이며, 독일은 29 대 71 수준. 분권위도 45 대 55는 돼야 어느 정도 지방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의 재정 확보를 위한 각종 조치는 요원한 상태다. 가장 중요한 지방소비세 도입 방안은 지난해 9월 재정분권 관계 장관회의에서 교육자치제, 경찰자치제, 특별지방행정기관 등의 기능 이양과 연계해 검토키로 결정함에 따라 그 일정 마련이 당초보다 1년 반 뒤인 2006년까지로 늦춰졌다. 골프장 경마장 경륜장 등의 특별소비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방안도 연내 마련이 목표지만 현재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분권위 재정세제팀 류순현(柳淳鉉) 과장은 “현재 논의 중인 국세와 지방세의 합리적 조정 과제가 마무리되는 2006년경엔 지자체의 재정 형편이 피부로 느낄 만큼 지금보다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대 기자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