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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 칼럼]국제분쟁은 성격불일치 탓?

입력 | 2004-11-18 18:50:00


스위스 제네바, 레만 호수 옆 ‘팔레 윌슨’ 유엔 인권위원회 본부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했다. 세계의 분쟁 예방에 관한 것이었으나 휴식시간의 화제는 단연 미국 대선 후 유럽과 미국의 관계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미영 정상회담 직후 “두 번째 임기에는 유럽 국가와 원만한 관계를 갖고 싶다”고 말한 직후였다.

“두 사람 모두 빨간 넥타이를 매고 기자단 앞에 섰다. 둘 다 권선징악의 원색을 좋아한다. 유럽정상회의 때 지도자들은 파스텔 색이나 약간 어두운 넥타이를 많이 맸다. 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걱정스럽다.”(스위스의 외교관)

“상당수 유럽 정치지도자는 존 케리의 당선을 기대한다고 하면서도 내심 그가 대통령이 되면 자신들의 책임이 더 무거워져 곤란해지지 않을까 염려했을 것이다. 부시를 상대로 해서는 그저 반대만 계속하면 됐기에.”(벨기에 전 총리)

“앞으로 유럽은 외교, 안전보장 측면에서도 통합에 속력을 낼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처럼 미국 정치가 종교색을 강하게 드러내 국가와 종교의 담이 무너진다면 미국에 대한 위화감이 더 커질 것이다. 영국도 이제는 진심으로 유럽통합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영국만큼 ‘전도사적 정치’를 싫어하는 나라가 없기에.”(핀란드 전 총리)

이라크가 가고 나면 우선 이란의 핵개발 문제가 미-유럽 관계의 향방을 점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란과 핵 폐기 교섭을 계속해 왔으나 미국에는 강경론이 우세하다. 미국과 유럽이 공동보조를 취하지 않으면 핵문제 해결은 불안하다. 승리를 얻는 것은 미국 혼자서도 가능하나 평화를 얻으려면 미국은 우호국 동맹국과의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이라크에서 경험한 일이다.

미-유럽 관계가 결정적으로 나빠진 것은 9·11테러 후 이라크전쟁으로 대테러전선이 확대되며 일어났다. 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현직 총리가 반미를 앞세워 총선에서 이겼고 △독일은 미-프랑스 마찰 발생시 중재 역할을 해 왔지만 이번에는 프랑스와 손잡고 미국에 반대했으며 △미국은 ‘구유럽’과 ‘신유럽’으로 유럽을 노골적으로 편 가르려 했다. 스페인에서는 ‘아래로부터의 반미’가 친미 정권을 뒤엎었다.

이런 현상의 근저에는 세계질서관의 대립이 있다. 체제 전환, 선제공격, 다자주의, 다극화 등 양자간 날카로운 의견대립 주제는 모두 여기서 비롯된다.

지난번 제네바 방문은 2001년 9월 11일이었다. 밤새 호텔방에서 TV를 지켜보았다. 그 후 3년. 무엇이 가장 크게 바뀌었나. 야세르 아라파트의 사망 뉴스를 TV로 보며 생각해 보았다.

‘정치가 공포에 의해 돌발적으로 행해진다. 공포의 대상은 테러라는 추상적 개념이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치나 종교를 추구한다. 이리하여 추상과 추상이 싸움을 벌인다. 상대가 무엇을 하느냐(정책)보다 상대가 무엇인가(존재)에 비판과 증오의 창끝이 돌려진다.’

쉽게 말해 의견의 불일치가 아니라 성격의 불일치라는 것이다. 그런 현상이 세계 차원에서 일어난다. 종교, 민족, 인종으로 인간의 속성이 정해지고 그 사회와 국가에 대한 호불호가 결정되고 만다.

미-유럽의 언쟁도 서로의 성격 불일치 때문일까. 열린사회의 특징인 불확실성이나 허약함 등 비슷한 측면이 많은 나라끼리 왜 그럴까. 진정한 대화는 상호간의 가능성과 취약성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