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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금 ‘藥’ 쏟아붓기… 재정적자 ‘毒’ 될수도

입력 | 2004-11-09 18:04:00


《정부와 여당이 뒤늦게 재정과 공공기금을 총동원한 경기부양에 나서면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당정이 뒤늦게나마 경제 살리기에 나선 것은 다행이지만 몰아치기식 경기부양책은 경기 흐름을 왜곡시켜 성장의 악순환 구조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경기부양대책은 재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민간투자와 소비를 회복시키는 근본대책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 대다수의 진단이다.》

사회간접자본(SOC) 등에 재정과 연기금 8조∼10조원 규모를 투입하는 ‘한국형 뉴딜정책’ 추진은 과연 한국 경제에 ‘약(藥)’이 될까, 아니면 미래 세대에 재정적자를 전가하는 ‘독약(毒藥)’이 될까.

이에 대해 정부여당은 내년도 5% 성장률 달성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정책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연기금으로 경기부양? ‘한국판 뉴딜정책’ 추진 논란(POLL)

그러나 야당은 ‘한국형 뉴딜정책’이 건설경기 거품만 조장하는 ‘마약 같은 정책’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몰아치기식 경기부양책, ‘경제 악순환’ 가능성 높아진다=정부는 7일 열린 ‘당-정-청 경제 워크숍’에서 한국형 뉴딜정책의 윤곽을 발표했지만 정작 구체적인 사업아이템을 결정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투자분야는 좀 더 검토해본 뒤 결정한다는 방침. 이는 그만큼 정부와 여당이 서두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정부 주도의 경기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밝힌 것처럼 연기금을 노인요양시설이나 학교시설 등에 동원하는 ‘복지형 투자’로는 경기를 살리거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대신 연기금을 활용하려는 것은 재정적자 규모를 감추려는 ‘편법 재정지출’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연기금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일정수익률을 보장할 경우 그 돈은 어차피 정부 재정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만약 비효율적인 공공 투자가 이뤄질 경우 ‘무분별한 재정투입→민간투자 및 소비침체 계속→낮은 성장률→조세수입 감소→재정적자 증가’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경제 악순환 구조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계 씨티그룹 산하 증권사인 씨티글로벌마켓(CGM)증권도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CGM은 9일 투자 보고서를 통해 “공적 연기금을 이용한 뉴딜정책을 내놓은 것은 날로 늘어나고 있는 재정 적자와 정부 부채를 가리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뉴딜정책의 순수성에 의구심을 내비쳤다.

▽민간투자가 훨씬 효율적이다=전문가들은 ‘정부발(發) 경기부양책’이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시키는 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구축효과(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투자를 늘릴 경우 오히려 민간부문 투자가 줄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현상)가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CGM도 “정부가 주도하는 투자 분야에 재원을 쏟아 붓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그보다는 그 재원을 민간 소비로 돌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또 정부가 국민의 노후를 담보하는 연기금을 ‘정부예산’처럼 보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벌써부터 ‘연기금 총동원령’이 내려지면서 연금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한국형 뉴딜투자로 고려 중인 복지부문 투자의 경우 투자수익률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은 현 정권에 있다=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위기에 직면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현 정부가 이른바 ‘개혁’을 앞세우면서 투자와 소비심리를 악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른바 ‘정치발(發) 경제 불황’이란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는 “지금 경제위기는 경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정치와 사회 불안에 따라 기업과 소비자의 경제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이라며 “정치 사회적 안정이 우선되지 않으면 어떤 경제정책을 내놓아도 효과가 적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기업 투자환경 개선과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 해소 등 경제심리 안정에 총력을 쏟아야 ‘민간부문 투자 및 소비 증가→높은 성장률→정부 조세수입 증가→재정흑자’의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차지완기자 cha@donga.com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