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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오디세이]“드라크마 시절이 좋았는데”

입력 | 2004-08-24 18:51:00


그리스는 관광산업으로 먹고 산다. 그걸 가능케 한 것은 수준 높은 문화유산, 깨끗한 환경, 친절한 국민성, 싼 물가였다. 덕분에 여름이면 아테네와 에게 해의 섬들은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뒤덮인다. 그 가운데에서도 독일인이 가장 많다. 한때 독일 출신이 그리스의 왕이 된 적이 있는 데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두 나라가 가깝기 때문이다.

화폐단위가 유로화로 바뀐 2002년 1월1일 이전 까지만 해도 그리스에선 마르크화가 위세를 떨쳤다. 이런 현상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그 북쪽의 발칸 제국에서도 마찬가지. 지금은 그리스나 독일, 모두가 유로화를 사용하므로 ‘마르크 경제권’이란 말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그리스의 원래 화폐는 ‘드라크마’다. 2700년 동안이나 중단 없이 써오다 그리스가 유럽연합(EU) 회원국이란 이유로 공식 무대에서 사라졌다.

아테네에 있는 주화박물관(트로이 유적을 발굴한 독일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의 저택을 개조한 것)에 전시된 기원전 5세기 때의 동전을 보면 올림픽 메달처럼 둥근 형태를 취한 동판에 올빼미를 새겼다. 올빼미는 지혜의 여신이자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의 상징. 그러므로 지혜를 가진 자만이 부를 이룰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정작 큰 문제는 드라크마에서 유로화로 화폐가 바뀌면서 물가가 갑자기 뛰어올랐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는 EU국가 가운데서도 소득이 아주 낮은 축에 든다. 여기에 유로화가 도입되자 잘사는 나라의 물가를 따라 잡으려는 이른바 ‘물가 동조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잔돈이 사라지면서 그만큼 물건값이 자동적으로 올라버렸다. 소득은 그다지 늘지 않았는데 물가만 크게 올랐으니 살기가 어려워진 것은 당연하다. 물가 싼 맛에 그리스를 찾던 관광객들도 발길을 돌렸다. 그리스인들도 비싼 물가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아직 바뀐 화폐단위에는 익숙하지 않다. 시장에선 두 개의 가격표를 내걸고 있다. 유로화와 드라크마화가 바로 그것이다.

권삼윤 역사여행가 tumid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