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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허문명/인간 이창동 vs 장관 이창동

입력 | 2004-07-01 19:03:00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파격적인 행보로 연일 뉴스거리를 제공했던 그는 1년4개월 전 첫 출근 때와 똑같이 지난달 30일 퇴임할 때도 자신의 차 싼타페를 직접 몰고 퇴근했다. 이임식도 갖지 않고 직원들과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떠나면서 많은 말을 하진 않았지만, “공익근무를 마치고 떠나는 것 같다”고 남겼다는 한마디는, ‘영화감독’ 이창동이 관료조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는 문화부 내에서 인기가 높았다. 직원들은 ‘복장 자율화’ 조치를 반겼고 직위를 따지지 않고 토론을 벌이는 그의 스타일을 좋아했다. 장관이 바뀐다고 하자 문화부 내 직장협의회 홈페이지에는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였다.

‘솔직하고 진지한 사람.’ 그러나 이는 인간 이창동에 대한 평가이지 장관 이창동에 관한 평가는 아니었다. 그는 한마디로 ‘현실감각 없는 이상주의자’였다. 그리하여 결국 ‘예술인도 훌륭한 장관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그는 취임 초 청와대의 대언론 공세에 앞장서 언론과 불편한 관계를 초래했다. 그가 나름대로 열심히 현장을 다녔다고 하지만, 정작 뭘 했는지 떠오르지 않는 것은 언론을 매개로 한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적 가치 판단을 떠나, 요즘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인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마케팅 감각이 부족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그가 마음먹고 1년여 동안 준비해 관심을 끌었던 ‘문화비전’과 ‘새 예술정책’도 이미 자신이 개각 대상에 포함됐다는 이야기가 나올 무렵에야 발표돼 힘을 잃었다. 교체가 기정사실화된 시점에서 자신의 친정인 영화계의 기대와 어긋나는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발표한 것도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는 평가다.

그는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맘대로 안 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이 일(장관)을 하면서 배웠다”고 털어놨다. 장관업무가 단지 한 사람의 인생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일로 끝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몫이라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허문명 문화부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