關中으로(3)
패공 유방은 완성(宛城)에서 사자가 나왔다는 말에 은근히 들떠 있었다. 사자가 나왔다면 항복을 비는 것일 터인데, 그 동안 여러 곳에서 싸웠으나 천하 서른여섯 군(郡) 가운데 하나를 다스리던 진나라 태수에게서 항복을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나름으로 궁리하고 있는데 사자라고 하는 자가 끌려왔다.
나라나 제후들 사이의 격조 높은 의례를 잘 모르는 패공으로서는 항복을 빌러온 사자는 마땅히 엎드려 떨며 너그러운 처분을 빌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나타난 사자를 보니 전혀 상상 밖이었다. 생김이나 몸집은 보잘것없어도 처신은 오히려 항복을 받으러 온 사람처럼 당당하였다.
“적군에게 에워싸인 성안의 장수가 할 일은 끝까지 싸우다 성벽을 베개 삼아 죽거나, 스스로를 묶어 항복하고 목숨을 비는 것뿐이다. 그런데 남양태수는 어찌하여 그 둘을 다 마다하고 너를 보냈느냐? 네 함부로 미끄러운 세 치 혀를 놀려 나를 달래려 들다가는 그 혀가 입안에 성하게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말 많은 책상물림, 특히 말로 남을 달래기를 일로 삼는 세객(說客) 따위를 싫어하는 패공이 짐짓 엄한 얼굴로 그렇게 사자를 겁주어 보았다. 그러나 사자는 조금도 움츠러드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빙긋 웃음까지 띄며 느긋하게 말을 받았다.
“성벽을 사이하고 창칼을 맞대었다 해서 장수에게 남는 길이 죽거나 항복하는 것뿐이라면 그 얼마나 살벌한 세상이겠습니까? 강한 자와 약한 자, 이긴 자와 진 자가 함께 살며 복록을 누리는 길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패공은 그때 벌써 사자가 범상치 않음을 알아보았으나 그래도 한 번 더 떠보는 기분으로 을러댔다.
“네 놈은 못 뚫을 방패가 없는 날카로운 창[모]과 어떤 창도 뚫지 못하는 든든한 방패[循]를 한꺼번에 팔고 있는 장사치라도 되는 것이냐? 창이 보다 날카로우면 방패가 뚫릴 것이요, 방패가 보다 든든하면 창이 뚫지 못할 터, 도대체 둘 다 이기는 싸움이 어디 있단 말이냐? 거듭 되잖은 소리를 하다가는 네 머리가 목 위에 남아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사자는 전혀 기죽는 기색 없이 받았다.
“패공 유방은 너그럽고 어진 장자라 하더니, 아무래도 소문이 헛되었던가 봅니다. 어찌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목숨으로 윽박지르기부터 먼저 하십니까?”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목소리를 가다듬어 물었다.
“제가 듣기로, 족하(足下= 고대의 경칭)께서 팽성(彭城)에 계실 때 초나라 회왕은 여럿에게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먼저 함양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관중왕(關中王)으로 세우겠다고 하였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그런 적이 있다.”
“그렇다면 족하께서는 어찌하여 이 완성을 에워싸고 헛되이 군사와 물자를 축내며 시일을 끌고 있습니까? 완성은 진나라 서른여섯 군(郡) 가운데서도 큰 군에 드는 남양의 도성(都城)으로서, 가까이 수십 개의 성이 연이어져 있는 데다 백성들이 많고 쌓아둔 곡식도 넉넉합니다. 게다가 성안의 군민(軍民)들은 항복하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 여겨, 모두 성벽 위에 올라 목숨을 걸고 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족하께서는 벌써 며칠째 급하게 이 성을 들이쳤으니, 틀림없이 휘하의 군사들이 많이 죽거나 다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완성을 그대로 두고 떠나시면 그때는 이 완성의 군사들이 족하를 뒤쫓으며 등 뒤를 칠 것이라, 이래저래 진퇴양난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계속 이 곳에 잡혀 있다가는 먼저 함양으로 들어가 관중왕이 될 기회를 잃을 것이요, 함부로 버려두고 떠났다가는 이 완성의 강한 군사가 뒤쫓아 와 앞뒤로 적을 맞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까지 들은 패공은 속으로 뜨끔했다. 사자가 자신의 처지를 눈으로 본 듯 훤히 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패공의 속마음을 읽은 것일까, 잠시 말을 멈추었던 사자가 간곡한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진정으로 족하를 위해 계책을 올리나니, 족하께서는 이쯤에서 장자의 풍도를 드러내 양쪽이 모두 이기고 얻게 되는 길을 찾으십시오. 너그럽고 어진 마음으로 남양태수의 항복을 받아들여 그를 후(侯)에 봉하시고, 그대로 이곳에 머무르면서 이번에는 족하를 위해 이 땅을 지키게 하십시오. 그렇게 뒤를 든든히 하고 남양의 갑졸(甲卒)까지 대군에 더한 다음 서쪽으로 밀고 드시면, 함양까지 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진나라 성읍(城邑)의 수장(戍將)들도 이 소문을 들으면 다투어 성문을 열고 족하를 기다릴 것이니, 쇠로 된 성벽에 끓는 물을 두른 성인들 족하께서 걱정할 게 무에 있겠습니까?”
거기까지 듣자 패공은 갑자기 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얼른 속을 드러내지 않고 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말은 잘 들었다. 그런데 너는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자인가?”
“저는 남양태수의 사인(舍人)으로 이름을 진회(陳恢)라고 합니다.”
그제야 진회가 공손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한동안 진회를 바라보던 패공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너 같은 사인을 두었으니 남양태수도 예사내기가 아니겠구나. 좋다. 네 얼굴을 보아 여의의 항복을 받아주겠다.”
패공은 그렇게 말하고 장량과 역이기에게 물어 남양태수 여의를 은후(殷侯)에 봉하게 했다. 그리고 완성에 그대로 남아 남양을 다스리게 하는 한편, 진회는 천호후(千戶侯)로 삼아 곁에 두고 부리기로 했다.
며칠 완성에 머물면서 군사를 쉬게 한 패공은 진회의 말대로 남양군의 갑졸 몇 천명까지 보태 세력을 키운 뒤 다시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함곡관이 북쪽에 있는데도 서쪽으로 길을 잡은 것은 장량 때문이었다. 패공이 군사가 불어난 걸 기뻐하며 무턱대고 북쪽으로 가려하자 장량이 말했다.
“아시다시피 함곡관은 이미 진군이 수비력을 집중하고 있는 곳이라 깨뜨리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서쪽으로 가서 단수(丹水) 북쪽의 무관(武關)을 통해 관중으로 드는 것이 나을 듯합니다. 진나라가 함곡관에만 힘을 쏟아 무관은 지킴이 허술할 뿐만 아니라, 우리 한나라의 서북쪽에 닿아 있어 한나라 사람들은 모두 그리로 드는 지리에 밝습니다. 먼저 단수에 이른 뒤에 단천(丹川) 계곡을 따라가면 사흘 안에 무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에 패공은 장량의 말을 받아들여 군사를 단수 쪽으로 나아가게 했다. 정말로 남양태수 여의가 항복을 하고도 오히려 후(侯)에 봉해졌다는 소문을 들어서인지 길목에 있는 성마다 스스로 성문을 열고 항복해왔다.
화살 한 개비 허비하지 않고 진나라 성을 여러 개 얻은 패공은 항복한 장수들을 너그럽게 다독인 뒤 길을 재촉해 단수(丹水)에 이르렀다. 고무후(高武侯) 척새(戚새)란 떠돌이 장수가 병사 수천과 함께 항복해왔다. 패공이 또한 기뻐하며 장수로 받아들이자 척새가 슬그머니 일러주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서릉(西陵)이란 곳에 패현(沛縣) 사람 왕릉(王陵)이 무리 만 여명과 더불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군사만도 6,7천을 헤아리는 터라, 휘하에 거두시면 패공께 크게 힘이 되실 것입니다. 같은 패현 사람이니 사람을 보내 달래 보시지요.”
하지만 왕릉이란 이름을 들은 패공은 이맛살부터 찌푸렸다. 같은 땅에서 나고 자란 왕릉은 패공이 어려서부터 잘 아는 사람이었다. 용력(勇力)이 남다른데다, 또래를 휘어잡고 부릴 줄도 알아 일찍부터 패현 저자거리 건달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했다. 거기다가 나이도 패공보다 두엇 많아 젊은 시절 저자거리를 떠돌 때는 패공도 그를 형님으로 모셨다. 패공이 이맛살을 찌푸린 것은 바로 그런 옛 기억 때문이었다.
“왕릉이 우리 밑에 들려고 하겠습니까?”
패공과 마찬가지로 왕릉을 잘 아는 노관이 곁에 있다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장량이 노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왕릉을 잘 아십니까?”
“고향 저자거리 주먹패였습니다. 사람됨이 거칠고 사나운데다 남의 밑에 들기를 싫어하여 곧 죽어도 우두머리 노릇을 하려고 했지요.”
“두 분과는 어떤 사이셨습니까?”
“패공이나 저보다 나이가 두어 살 많아 저자거리에서 만나면 인사치레로 형님이라 불렀습니다만, 저는 곧잘 나를 졸개처럼 대했습니다.”
노관이 별로 좋지 못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하자 장량은 더 듣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빙긋 웃었다.
“출세하여 고향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것은 옛 기억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 고향에서 저지른 온갖 어리석고 못난 짓을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열에 아홉 그때와 이제의 처지가 엇바뀌어 있어 반갑기보다 거북할 때가 많겠지요. 하지만 또한 가장 인정에 호소하기 좋은 것이 고향사람입니다.”
장량은 그렇게 말한 뒤 패공에게 권했다.
“왕릉을 찾아보시지요. 그만한 무리를 거느렸다면 어차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휘하에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맞서려 드는 것은 막아야지요. 전군을 이끌고 가서 은근히 우리의 세력을 보여주는 한편 소박한 인정으로 달래면 굳이 우리를 해코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에 패공은 군사를 서릉으로 돌렸다.
그 때 왕릉은 무리 만 여명과 더불어 한 야산에 진을 치고 있었다. 갑자기 패공이 이끈 3만 대군이 이르자 긴장하여 갑옷투구를 여며 쓰고 말에 올라 달려 나왔다. 왕릉을 뒤따르는 여남은 기(騎)도 제법 장수 티가 났다.
하지만 왕릉의 기세가 자못 씩씩하다 해도 마주 오는 패공과는 견줄 바가 아니었다. 그러잖아도 멀쑥한 허우대에 번쩍이는 갑옷을 걸치고 붉은 술을 늘어뜨린 투구를 얹으니 패현 저자거리의 건달 유계(劉季)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곁에 갑옷투구를 갖추고 늘어선 장수만도 서른 명이 넘었고, 그 뒤를 에워싼 기사(騎士)와 기병(騎兵)은 수백을 헤아렸다.
“멈추시오! 앞에 오는 군사는 누구의 군사며 어디서 와 어디로 가시오?”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운 왕릉이 그래도 기죽지 않고 소리쳐 물었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