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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점 탐험]12월9일 10일째 대원들 남극에 도로공사?

입력 | 2003-12-11 17:26:00

운행도중 바람을 등지고 앉아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탐험대원들


날씨 : 아침 화이트아웃, 출발 후 대체로 맑음, 오전에 잠깐 눈발

기온 : 영하 14도

풍속 : 초속 5.5m

운행시간 : 08:00 - 19:00(11시간)

운행거리 : 23.0km (누계 : 137.2km)

야영위치 : 남위 81도11분 221초 / 서경 80도39분789초

고도 : 856m

기상 그리고 식사준비에 이은 아침식사와 출발준비. 거의 판에 박은 듯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다.

그러나 다른 것도 있었다. 출발준비를 마치고 밖에 나와 보니 화이트 아웃으로 발밑 시야까지 잘 보이지 않는다. 박대장은 출발을 미루고 텐트 안으로 들어와 대기할 것을 지시한다. 30분 후, 문밖을 내다보던 오희준 대원이 하늘이 열렸다며 밖으로 나선다. 텐트 안에서 대기하던 대원들이 갑자기 분주해 진다. 출발준비가 순조롭다. 비록 하늘은 흐린 상태이지만 극점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대원들의 손과 발을 가쁘게 하는 것이다. 마무리 짐을 썰매에 꾸리는 동안 박대장은 남쪽을 바라보며 나침반을 꺼내 들고 나아갈 방향을 재차 삼차 확인한다. 두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몸의 중심을 똑바로 세운 상태에서 두손으로 나침반을 받쳐 든 모습이 무척 진지하다.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기 전의 ? 포지션 동작과 거의 같다. 방향을 확인 한 박대장은 대원들에게 출발을 알리고 앞으로 나선다.

출발과 함께 눈발이 날린다. 남극의 눈은 밀가루처럼 가늘다. 내리는 눈도 가늘고 설원에 쌓여 있는 눈도 가늘다. 내리는 눈 구경하기가 힘들다는 남극에서 벌써 이틀째 내리는 눈 구경이다.

오늘은 설원의 눈 상태가 처음부터 분설이다. 대원들에게는 힘겨운 운행을 하게 만드는 분설이 반가울 리 없다. 대원들이 사용하는 썰매는 노르웨이산으로 남극에 맞게 특수 제작된 것. 썰매 바닥에는 눈 위에서 잘 미끄러지도록 스케이트의 날에 해당하는 런너가 두 가닥 붙어 있다. 두개의 런너가 설사면과의 마찰을 최소화하여 잘 미끄러지게 설계한 것인데 눈의 질에 따라 썰매는 잘 끌리기도 하고, 잘 안 끌리기도 한다. 단단한 눈일수록 썰매는 잘 끌린다. 오늘 같은 분설에서는 죽어라 안 끌린다. 썰매 앞면과 바닥 전체가 눈에 파묻히듯 끌리기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고 힘은 힘대로 든다. 그런 길의 연속이어서 인지 대원들의 몸은 평소보다 앞쪽으로 더 기운상태에서 썰매를 끌고 간다.

추운 날씨에도 몸에서는 땀이 배어 나오고 운행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가빠진다. 오늘 같은 날은 설원에 새로 도로를 내는 기분이다. 다섯 대의 썰매가 지나간 자리에 움푹 파인 자국이 마치 설원위에 도로가 새로 난 것 같다. 11시 30분의 첫 간식시간, 아침 식사가 부족했던지 이치상 대원은 다른 대원 두 배 분량의 간식을 먹어 치운다. 도로공사를 하느라 출출하기는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꺼내놓은 간식을 추운 와중에도 게걸스럽게 헤치운다. 한국을 떠나오기 전, 대원들은 체지방을 축적하며 탐험에 대비해왔다. 뚱뚱해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다섯 명의 대원은 몸을 눈에 띄게 불려 왔었다. 탐험 10일째인 오늘 멜빵 없는 고어텍스 방풍바지를 입고 운행하던 대원들이 한마디씩 한다. "내일부터는 멜빵매야 겠네" 10일 동안 추위와 고된 운행에 살이 빠진 것은 당연한 일 일 것이다.

오후 3시, 간식 겸 휴식으로 대원들의 운행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아침식사가 부실했던 강철원 대원은 저만치 뒤로 처진다. 앞서가는 박대장이 스틱에 의지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쉬는 빈도가 늘어났다. 그래도 가끔씩 방향을 잡을 때는 언제나 처럼 가지런히 발을 모은 뒤 몸을 바르게 한 후에야 나침반을 들고 전방을 주시한다. 극점에 점점 다가갈수록 나침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남쪽은 점점 왼쪽으로 빗겨난다. 지도상의 남극점(탐험대가 찾아가고 있는 남극점)과 나침반이 가리키는 자남점은 1000km이상 떨어져 있다. 탐험대의 진행방향에서 볼 때 자남점은 남극점의 좌측에 위치한다. 극점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침반의 바늘은 점점 더 왼쪽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 오차만큼 계산해서 방향을 잡아 나가야 한다. 박대장의 나침반 보기와 방향유지는 말 그대로 길잡이인 셈이다. 방향을 잘 잡았는지 잘 못잡았는 지는 전날의 좌표-서경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오후 5시 휴식, 15분후에 뒤떨어져 있던 강철원 대원이 합류한다. 박대장은 강대원의 상태를 직접 물어 확인하고 "먼저 가서 텐트 치고 있을 테니 컨디션 조절해 가면서 뒤따라오라"고 말하고는 앞으로 나선다. 19시에 운행을 멈춘다. 도로공사가 오늘은 일단 끝이다. 고된 하루였다.

저녁식사 후, 이현조 대원은 대원들의 스키에 스킨(앞으로는 잘나가고 뒤로는 밀리지 않게 스키 바닥에 붙이는 천 조각)을 붙여준다. 밤 11시가 넘은 밖은 유난히 해가 밝다. 북반구의 동지면 이곳 남극에서는 해가 가장 길다. '칠흑 같은 밤'이 아닌 '대낮 같이 환한 밤'이다.

남극탐험대 이치상 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