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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지야 벨벳혁명 ‘30代 쌍두마차’

입력 | 2003-11-24 19:25:00



사카슈빌리 당수 -AP 연합

《23일 그루지야의 무혈 시민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주역은 30대의 두 젊은 정치인이었다. 임시 대통령에 지명된 니노 부르자나제 민주당 당수(39)와 미하일 사카슈빌리 국민행동당 당수(35)가 그들. 두 사람 모두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그루지야 대통령 밑에서 정치에 입문했으나 결국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며 정권을 타도하는 선봉의 역할을 했다.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이 사임하자 미국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혁명 세력’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부르자나제 임시 대통령은 24일 “헌법에 규정된 대로 45일 안에 선거를 실시해 새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사카슈빌리 국민행동당 당수▼
그루지야판 ‘벨벳 혁명’(1989년 체코의 무혈 시민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사카슈빌리 국민행동당 당수는 서구적인 사고방식과 개혁 마인드를 가진 유학파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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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에 실각한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이 만든 집권 ‘시민연합’의 당 대표까지 지냈으나 결국 그를 축출한 ‘호랑이 새끼’가 됐다.
우크라이나와 프랑스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미국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졸업해 서방세계에 일찍 눈떴다. 이후 미 뉴욕의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27세 때 “조국에서 일하자”는 지인의 권유로 귀국했다.
귀국 직후인 1995년 의원으로 선출됐으며 2000년 법무장관이 됐다.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과의 갈등이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행정부 고위직 인사들의 초호화판 빌라 사진을 공개하며 부정부패에 칼을 댔으나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은 이를 ‘볼셰비키식’이라며 외면했다. 그는 2001년 “정부는 개혁의지가 없다”며 장관직을 사임했다.
이후에도 거침없이 정권을 비판했다.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과의 갈등은 갈수록 증폭됐고, 결국 지난해 시민연합을 탈당해 국민행동당을 창당했다.
사카슈빌리 당수는 네덜란드인과 결혼했으며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탓에 서구적 사고를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외신들에 이번 반정부 시위의 명분과 이유를 직접 대변하기도 했다.
그는 대권에도 뜻이 있음을 여러 번 내비쳤다.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이 혼란을 수습할 필요가 있으며 내게 그럴 능력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비판론자들은 그가 유명세를 타기 원하며 과욕에 빠진 대중선동가라고 혹평하기도 한다.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부르자나제 임시 대통령▼



“안정이 중요하다. 대통령에게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해선 안 된다.”
부르자나제 민주당 당수는 22일 의사당으로 몰려가는 성난 군중을 향해 이렇게 호소했다. 정권의 부정부패를 송곳처럼 지적했던 그의 냉정함은 한껏 고조된 혁명 기운이 의회 의사당을 덮칠 때도 여전했다.
그는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의 퇴임과 미국의 새 정권 지지표명이 이뤄진 뒤인 24일 “다음 대선에 출마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경제난과 민족분규가 심해 차기 대통령은 강력한 용기를 가진 인물이 돼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사카슈빌리 국민행동당 당수에게 대권을 양보하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이었다.
부르자나제 당수의 정치역정은 사카슈빌리 당수와 비슷하다. 전공이 법학인 것도,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이 이끌던 집권 시민연합에서 정계에 입문한 것도,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이번 혁명 과정에서 외신기자들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설명한 점도 똑같다.
다만 강경 발언으로 일관하며 선동가적 기질을 보인 사카슈빌리 당수와 달리 대중 정치인답지 않게 절제되고 차분한 발언으로 일관했다. 혁명지도부에 대해 ‘냉온(冷溫)’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룬 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르자나제 임시 대통령이 그루지야 의회에 등원한 것은 1995년. 6년 만인 2001년 의회의장 자리에 올랐다. 남성 의원들의 밀실흥정이 판치는 그루지야의 정치현실에선 이례적으로 빠른 출세였다. 의회 대외관계위원장을 맡으면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강도 높게 비판해 소신을 평가받기도 했다.
5월 각료회의에서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이 의회의 비협조를 강하게 비난하자 이달 2일 총선 직전 시민연합을 탈당했다. 셰바르드나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사임한 바드리 비드자제 대검 제1차장이 남편이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