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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자녀와 함께 30분 책읽기 운동

입력 | 2003-10-21 16:45:00

정은주씨 가족. 정씨는 “자녀가 책을 읽지 않아 걱정이라면 자녀에게 책 읽을 시간을 충분히 주라”고 조언한다.김진경기자 kjk9@donga.com


《‘자녀와 함께 30분 책읽기운동 준비위원회’(공동위원장 박철원)는 22일 매일 저녁 온 가족이 둘러앉아 책을 읽고 대화하자는 운동을 전개한다.

준비위는 매월 25일을 ‘책 선물하는 날’로 선언하는 한편 모범적으로 책 읽는 가정을 선발하는 등 독서를 독려해 나갈 계획이다.

본보는 이 행사를 후원하기 위해 수요일 ‘KIDS’섹션을 통해 매월 1회 모범적으로 책 읽는 가정을 취재해 소개한다.

참여를 원하는 가정이 간단한 소개의 글을 우편((우)110-715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 동아일보 ‘KIDS’ 섹션 담당자 앞)이나 e메일(kissbooks@donga.com)로 보내주면, 담당기자가 그중 가장 모범적인 가정을 골라 취재할 예정이다.》

●정은주씨 가족-"세살 독서버릇 여든 가죠"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정은주씨(42·한우리 독서지도사)의 아파트에 들어서면 오른편 책장 앞에 커다란 테이블이 있다. 남편(53·개인사업)과 아들 하철수(중 3년) 딸 수연(중 1년)이 틈틈이 둘러앉아 책을 읽는 곳이다.

철수는 글을 일찍 깨쳐 처음엔 천재인 줄 알았다. 두 돌이 지나자마자 신문에서 광고를 보고 한글을 읽더라는 것. 더구나 초등학교 때 몸이 아파 친구들과 밖에서 마음대로 뛰어 놀지 못하자 더욱 책을 가까이하게 됐다.

수연이는 세 돌이 지날 무렵 철수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한달 동안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그리고 수연이를 무릎에 앉히고 함께 책을 읽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모녀가 한몸이 된 듯한 느낌이 들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는 것. 수연이는 지금도 가끔 테이블에서 엄마무릎에 앉아 책을 읽는데 정씨는 ‘무겁다’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어리광이 남아있는 듯한 수연이에게 요즘 무슨 책을 읽나 물었더니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란다.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학원에 가본 적은 없지만 방배중 1학년 전체에서 수석을 놓치지 않는다.

아무래도 정씨가 일찌감치 독서교육을 시킨 덕분이다. 결혼 전 교직에 몸담았던 정씨가 아이들이 4∼6세가 돼 움직일 만해지자 선택한 일이 독서지도사였다. 지금도 일주일에 하루 성동복지관에 나가 정신지체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거나 전래동화를 들려준다.

정씨는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일주일 내내 학원 때문에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며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 걱정된다면 먼저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시간을 많이 주라”고 조언한다.

학원도 학원이지만 많은 엄마들의 고민은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에만 매달려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철수도 컴퓨터 게임에 빠진 적이 있어요. 초등 6학년 한창 ‘바람의 나라’가 유행할 때였습니다. 통신료가 16만원이나 나와 얘기했더니 그 다음날 딱 끊어요. 만 3개월 만이었지요.”

누구나 한때 게임에 몰두할지는 몰라도 어려서 책읽는 습관을 들인 아이들은 금방 싫증을 느끼고 책에서 더 큰 기쁨을 얻는다고. 정씨는 철수의 예를 들며 “관련지어 읽히거나 좋아하는 분야를 읽히면 책에 대한 흥미를 돋울 수 있다”고 귀띔했다.

철수는 책을 통해 기본지식을 터득한 뒤 기계를 만진다. 컴퓨터를 만지거나 카메라 전자기타에 빠졌을 때도 책을 먼저 보았다. 철수는 “저는 무슨 분야나 한번 시작하면 제대로 하고 싶어요. 제일 편하고 쉽게 그 분야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책이잖아요. 책엔 없는 것이 없으니까요.”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노형국씨 가족. 노씨는 “진짜 공부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행복하게 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김진경기자

●노형국씨 가족-“거실이 우리가족 서재죠”

경기 김포시 풍무동에 사는 노형국씨(42·개인사업) 아파트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까만 글씨, 빨간 글씨, 파란 글씨로 책 제목이 쓰인 게시판이 눈에 띈다.

노씨의 부인 이혜경씨(40·한우리 독서지도사)는 “가족 서로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있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책에 관해 필요한 조언도 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예를 들면 파란 글씨로 쓰인 ‘노빈손 아이스케키 공화국을 구하라 1, 2’는 딸 의현이(초등 6년)가 읽는 책이다. 책 제목 옆에 있는 날짜는? “아이들이 한번 책을 잡으면 한없이 갖고 있기 때문에 2, 3일 내에 읽으라는 뜻에서 읽기 시작한 날을 써 넣은 것”이라는 이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요즘 이 가족이 읽는 책들은 화장실 입구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소설 ‘장길산’을 누가 읽나 물었더니 아들 의균이(중 2년)가 읽고 있는 중이라고.

거실을 보면 TV와 소파가 없고 대신 벽을 채운 책장과 컴퓨터가 놓여있다. 아이들은 공부는 각자 방에서 하지만 책읽기와 컴퓨터는 거실에서 한다. 거실이 서재인 셈. 잠자기 한 시간 전 가족들은 거실로 나와 책을 읽는다. 눕거나 엎드리거나 편한 자세면 된다.

독서 외에 가족이 함께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노씨는 대답 대신 이달 초 설악산 주말 산행을 앞두고 아들 의균이와 나눈 대화를 소개했다.

“다음주가 시험이에요. 토요일 영어시간에 배운 것도 시험범위에 들어가 빠지면 안 돼요. 수학도 한번 더 훑어봐야 하고.”

“공부는 평소에 하는 거야. 가을산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이씨는 “너희가 더 크면 더더욱 산행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거들었다고.

이들 부부는 학원공부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씨는 “아이들이 학원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했고 노씨는 “대학입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어떻게 행복하게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서울 강남에서 독서지도사로 활동할 때 ‘아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뭔지 모를 압박감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 자신도 내 아이들을 그 아이들과 견주어가며 맞춰 가면 어쩌나 불안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전북 임실군 운암면 마암분교 근처에서의 생활이다. 아이들이 초등 5학년, 3학년 때였다. 노씨는 서울 본가에 살며 주말마다 시골로 달려갔다.

“일년간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풍물전수관에서 풍물을 쳤어요. 아이들은 만들어진 것에 익숙한 도시아이들과 달리 만들어서 놀 수 밖에 없었고요. 큰애는 아직까지 풍물반에서 활동하고 있고 작은애는 풍물을 치고 나올 때 쏟아지던 별에 반해 천체에 관심이 많아요.”

김진경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