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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이수곤/절개지 붕괴도 책임 물어야

입력 | 2003-09-14 18:49:00


태풍 ‘매미’에 의해 전국적으로 고속도로 4곳, 국도 64곳, 철도 여러 곳이 두절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그중 70%가 산사태로 인한 피해다. 17명의 인명 손실까지 났다. 지난해 태풍 ‘루사’ 때에는 폭우가 집중된 강원도에서 산사태가 많이 일어났고 올해는 경상도에서 산사태가 많이 발생했다. 그러나 똑같은 태풍 ‘매미’가 통과한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산사태 피해가 적었다.

우리의 경우 산사태 중에서도 특히 인위적으로 땅을 깎아 주택 도로 철도를 만들면서 생겨난 절개지가 붕괴되면서 발생한 피해가 특히 심한 편이다. 이번에 새마을호가 탈선하고 수십 명이 부상한 충북 단양 부근 터널 입구의 산사태가 그런 경우다.

절개지 붕괴는 자연재해라기보다 인재(人災)의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우선 매년 여름 발생했던 절개지 붕괴 사고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사후 대책에만 급급해 일과성으로 지나갔기 때문이다.

둘째는 기술적으로 전문가가 아니면 붕괴 원인을 정확히 밝히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현재로서는 건설교통부 규정대로 절개지를 63도로 깎기만 하면 공사에 관련된 설계자, 시공자, 감리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책임 소재는 비가 많이 왔거나 지질이 복잡한 탓으로 돌려지는 실정이다.

절개지는 본래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견디도록 설계하게 되어 있다. 설계시에 지질이 복잡한 것을 몰랐다면 충실하게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에 지나지 않는다. 절개지는 무너질 때마다 정부에서 복구비를 지출하는데 건당 수억∼수백억원까지 드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절개지가 무너지면 시공자는 책임은커녕 오히려 복구공사비를 벌게 된다. 긴급 공사이므로 수의계약인 경우가 많고 사후 감사도 허술한 편이다. 공사를 감독하는 감리 역할도 설계회사에서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건교부가 몇 가지 대책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대책은 오히려 예산 낭비와 환경 훼손의 우려가 높은 것이었다.

첫째, 절개지 경사도를 기존 63도에서 40도로 하겠다는데 경사를 완만하게 한다고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같이 73도로 가파르게 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절개 각도를 완만하게 하면 공사비만 늘려 국고가 낭비되고 절개지 높이가 늘어나 환경 훼손이 커진다.

둘째, 20m 높이의 절개지 건설시 정밀조사를 하겠다는데 그보다 낮은 소규모의 절개지도 대규모 붕괴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태풍 ‘루사’ 때 높이 7m였던 강원 강릉시 왕산면 국도 절개지가 붕괴돼 지나가던 차량 6대가 매몰된 사례도 있듯 모든 절개지는 규모에 관계없이 건설시 정밀조사가 필요하다.

셋째, 장기적인 유지관리를 하겠다고 하는데 근래에 건설되는 절개지는 표면에 녹화를 하므로 지표면에서 지질 상태 및 붕괴 가능성을 살피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예 건설시에 제대로 공사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고는 절개지 사고가 또다시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교량이나 터널이 붕괴되면 건설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과 같이 절개지도 책임 건설하도록 제도화해야 허술한 설계와 시공이 줄고, 따라서 붕괴사고도 예방할 수 있다. 정부 당국은 이 같은 자명한 이치에 더 이상 눈감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