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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강신장/전진을 위한 '멈춤'

입력 | 2003-08-21 18:24:00

강신장


올 7월 사상 유례없는 폭염으로 알프스 빙하까지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전거를 타고 피레네산맥을 넘는 인내의 레이스인 ‘투르 드 프랑스’가 파리의 샹젤리제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서는 5연패를 달성한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 선수가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챔피언으로는 독일의 얀 울리히 선수를 꼽는 사람이 많다. 왜 그럴까.

울리히는 99년부터 줄곧 암스트롱에게 1위 자리를 내준 만년 2위 선수다. 그러나 7월 22일 제15구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암스트롱과 울리히의 시간차는 단 15초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15구간이 진행되던 중 암스트롱은 응원 나온 한 아이의 가방에 걸려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고 말았다. 울리히는 달려 나가기만 하면 역전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사이클을 세우고 침착한 표정으로 암스트롱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암스트롱이 일어나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한 뒤 그 역시 비로소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울리히는 1등 자리를 암스트롱에게 내주었다. 하지만 울리히가 쓰러진 암스트롱을 기다렸다는 소식은 곧 세계의 화제가 됐다. 아무도 그의 멈춤과 기다림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울리히의 행동을 두고 ‘페어플레이’라는 표현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너무나 위대한 것, 그래서 ‘위대한 멈춤’ ‘거룩한 양보’라고 명명했다.

암스트롱의 5연패 뒤에 울리히의 위대한 멈춤이 있었듯 어쩌면 모든 승리 뒤에는 누군가의 이러한 멈춤이 있을지 모른다. 라인강의 기적, 한강의 기적 뒤에도 이름모를 ‘위대한 멈춤’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전대미문이라 할 만한 난관 앞에 서 있다. 강대국, 신흥 개도국들과 글로벌 전쟁을 치르는가 하면 북한 리스크, 지역감정과 세대갈등, 정치대립과 무한 욕구분출 등의 문제도 앞에 두고 있다. 실로 ‘위대한 멈춤’이 다시 한번 발휘되지 않고는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양보와 멈춤 없이는 미래도 꿈도 없다. 한강의 기적을 되새기며 우리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멈춤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강신장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실장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