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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비]그리움의 향기

입력 | 2003-07-25 18:06:00


친지들에게서 ‘그리운 수녀님…’으로 시작하는 글을 받으면 반갑고 기쁘다. 그리움이란 단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움이란 단어에선 비에 젖은 재스민 꽃향기가 난다. 고향집의 저녁 연기가 보이고 해질녘의 강물 소리가 들린다.

보고 싶다는 말은 또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가. 언젠가 친구 수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언제 만나지요? 정말 보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그 말이 하도 애틋하고 정겹게 들려 나는 ‘생전 처음 듣는 말처럼/오늘은 이 말이 새롭다/사랑한다는 말보다/더 감칠맛 나는/네 말 속에 들어있는 평범하지만/깊디깊은 그리움의 바다, 보고 싶은데’라고 시를 썼다. 그런데 어떤 독자들은 그 대상이 이성이 아닌가 하는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도 많이 던져 이 시를 시집에서 뺐다가 근래에 다시 넣었다.

늘 감정절제를 수행의 미덕으로 삼는 수도생활의 연륜이 쌓이면 자기도 모르게 ‘사랑한다’ ‘보고 싶다’ ‘좋아한다’는 표현엔 인색해지고 오히려 사무적이고 무미건조한 표현은 익숙하게 쓰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마치 크게 웃으면 안 되는 것처럼, 울면 부끄러운 것처럼 경직된 삶을 살진 않았는가 반성해볼 때가 있다. 엄격한 규율 때문이라고 변명하려 하지만 사실은 덕에 많이 나아간 사람일수록 감정표현을 더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하는 것 같다.

신과 인간과 사물과 자연을 항상 그리움의 대상으로 삼고 그런 마음을 꾸밈없이 표현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움은 마음에 고인 호수 빛 눈물’(한기팔), ‘병이란 그리워할 줄 모르는 것’(이성복)이라고 노래한 시인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오늘도 내 안에 고요히 그리움을 키우리라.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모두 그리움의 나그네가 아닐까. 기도는 인간이 신께 드리는 끝없는 그리움의 향기임을 묵상하는 이 아침, 바람에 실려 오는 태산목 향기 속에 나는 이렇게 읊조려 본다.

‘주님 당신을 향한 그리움이 깊어갈수록 당신을 닮은 사람들도 그리워하는 이 마음 어여삐 여기소서. 작은 그리움들이 모여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게 하소서.’

이해인 수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