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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상영/비틀

입력 | 2003-07-09 18:39:00


독일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큰소리치며 정권을 잡은 아돌프 히틀러는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아우토반’을 건설했다. 다음에는 아우토반 위를 달릴 자동차가 필요했다. 자신의 인기 관리를 위해서도 국민들이 싼 값에 살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어야 했다. 벤츠와 포르셰를 설계한 당대 최고의 자동차 설계가 포르셰 박사가 이 일을 맡았다. 당시로서는 완전한 신개념의 자동차 ‘폴크스바겐’(독일어로 ‘국민차’라는 뜻)은 이렇게 해서 태어났다. 독일을 전쟁과 패망의 수렁으로 이끈 히틀러가 전후 독일 부흥의 단초를 마련해 뒀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히틀러는 포르셰 박사에게 ‘어른 2명과 어린이 3명이 탈 수 있는 차, 연료 1L로 14.5km 이상 달릴 수 있으며 정비가 쉬운 차, 값은 1000마르크 이하인 차’를 요구했다. 1934년 이 차가 처음 나왔을 때 값은 당초 목표보다도 싼 900마르크였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은 이 차를 가질 수 없었다. 히틀러는 폴크스바겐 우표를 발행해 이 우표를 900마르크어치 사 모으면 차를 주겠다고 했다. 오토바이 값에 자동차를 마련할 수 있다는 말에 우표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히틀러는 이 돈으로 전쟁을 준비했고 곧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폴크스바겐 공장은 군수공장으로 변했다. 이때까지 생산된 폴크스바겐은 630대에 불과했다.

▷패망한 독일 국민은 경제부흥을 위해 폴크스바겐에 매달렸다. 독일을 점령한 미군 중 상당수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싼 맛에’ 폴크스바겐을 구입했다. 미국인들은 이 차의 생긴 모습을 보고 ‘비틀(딱정벌레)’이란 별명을 붙였고 이후 미국시장에서는 ‘비틀’이 공식 이름으로 채택됐다. 비틀은 패전국 독일 산업의 상징이었고 독일 경제부흥의 견인차였다. 1947년부터 사실상 대량생산이 중단된 78년까지 2000만대 이상이 생산돼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차이다.

▷비틀의 성공 비결은 저렴한 가격과 유지비, 뛰어난 성능이었다. 독특한 디자인은 코카콜라 병과 함께 20세기 디자인 걸작으로 꼽힌다. ‘작은 것을 생각하세요(Think small)’로 시작한 비틀의 광고는 ‘못 생긴 것은 외모뿐’ ‘폴크스바겐도 잘못 만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등 주옥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이런 비틀이 생산 69년 만에 단종된다고 한다. 98년 나온 뉴비틀은 외관만 같을 뿐 내용은 완전히 다른 차다. 우리는 이름만 들어도 ‘코리아’가 떠오르는 제품을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

김상영 논설위원 you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