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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특검연장 거부]"150억 규명않고 어떻게 결론내나"

입력 | 2003-06-23 18:49:00

노무현 대통령(왼쪽)이 23일 대북 송금 의혹사건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승인 요청을 거부하는 입장을 밝히기 위해 심각한 표정으로 수석보좌관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송두환 특별검사는 이날 굳은 표정으로 특검 사무실에 출근했다.-박경모기자·강병기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한 것은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노 대통령이 23일 내세운 연장 거부 이유가 법률적 관점에서 볼 때 ‘논리적 모순과 불합리성’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특검팀의 조사를 대통령이 중단시킴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덮어버려 사건을 미궁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법조계는 노 대통령이 법률보다 정치적 고려에 치중함으로써 대북 송금 사건을 통해 후대에 교훈을 남길 수 있는 기회를 막았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노 대통령의 특검 연장 거부 이유에 대해 법률가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150억원 뇌물사건은 별개의 사건인가=노 대통령은 특검의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하면서 “대북 송금 의혹사건과 150억원 의혹사건은 법률적, 정치적으로 별개의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는 송두환(宋斗煥) 특검팀의 입장뿐 아니라 법무부측의 견해와도 상반되는 것. 송 특검은 21일 노 대통령을 면담하고 “150억원 수수의혹은 특검법상 대북 송금 의혹 사건과 연관된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특검팀은 박지원(朴智元)씨가 대북 특사 및 문화관광부 장관 자격으로 대북사업 전반에 직접 개입하면서 현대측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은 만큼 이는 명백히 대북 송금 의혹사건의 일부라고 지적하고 있다.

강금실(康錦實) 법무부 장관, 정상명(鄭相明) 법무차관도 같은 의견이었다. 강 장관 등은 특히 150억원 수수의혹 수사를 검찰로 떠넘기려는 정치권 일부의 움직임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 수사 범위에 대한 자의해석=노 대통령은 150억원 수수의혹과 대북 송금 의혹사건이 왜 별개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은 이와 관련해 “대통령이 고도의 법률적 해석을 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거부 논리에 법률적 고려가 적었음을 시사하는 것.

그러나 ‘고도의 법률적 해석’이 아니더라도 특검법에는 150억원을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명시되어 있는 상태. 특검법 제2조에는 “송금 사건과 관련한 청와대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등의 비리의혹을 수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150억원 뇌물수수 의혹을 특검의 수사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수사론’의 문제점=노 대통령이 박 전 장관의 150억원 수수의혹을 검찰 또는 ‘제2의 특검’에 맡기자고 한 것도 실효성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특검법 제정 취지는 검찰보다 ‘수사의 독립성’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을 다시 검찰에 맡겨보자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이미 가동 중인 특검을 중단하고 일부 사안만을 떼내 ‘또 다른 특검’에 맡긴다는 것도 실효성은 물론 수사의 연속성을 크게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실체적 진실은 미궁으로?=특검 수사가 1차 기간으로 끝남에 따라 대북 송금 규모와 과정을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이 ‘미제’로 남을 공산이 크다.

우선 대북 송금과 관련, 박 전 장관과 임동원(林東源)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협상 및 송금 과정을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자체가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대북 송금의 성격이나 이 사건 전반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불가능해져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박 전 장관이 150억원을 받은 구체적 경위와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았다. 수사 여부에 따라 최대의 ‘정치비자금 스캔들’로 비화할 수 있는 이 사건은 특검 중단으로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왜 거부했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3일 대북 송금 의혹사건 특검팀의 수사기간 연장 승인 요청을 거부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리(法理)였다”고 강조하면서도 그 같은 결정을 내린 정치적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문제나 그에 따른 호남 민심의 악화 우려, 남북정상회담이 정면으로 수사대상에 오른 데 대한 젊은 지지층의 반발 등 이번 사안과 연결돼 있는 여러 정치적 변수에 대한 자신의 속내는 조금도 드러내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당장 특검팀은 노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정치적인 고려”라고 규정했고, 노 대통령의 결정 배경에는 실제 지지층 이탈을 막겠다는 계산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비서관도 이날 보충 브리핑에서 “기존의 특검이 150억원 비자금 부분을 수사하는 데 대해 강력한 반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굳이 많은 논란을 무릅쓰면서 기존의 특검이 그 부분까지 수사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런 점도 수사의 효율성에 포함되는 얘기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장 요청을 승인하면 지지층으로부터 맞아죽을 수밖에 없다’며 연장 거부를 강력히 주장했던 청와대 내의 정무라인 쪽은 노 대통령의 선택이 야당의 반발은 부르겠지만 지지층의 이탈을 막는 데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은 “일단 민주당 쪽은 지난번에 특검법을 수용했을 때의 서운함이 풀린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히 청와대는 앞으로 개혁신당이든 통합신당이든 노 대통령 지지기반의 주력부대가 될 수밖에 없는 친노(親盧) 신당추진세력이 설 땅을 찾았다는 점에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생각하는 지지층 이탈 방지는 단순히 주류-비주류간의 화해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개혁세력’으로 통칭할 수 있는 정치권 안팎의 지지층에서 한목소리로 특검 연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만큼 이를 무시할 경우 앞으로 여권 핵심부가 그리고 있는 정치권 변화를 통한 입지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으로 호남 민심이 되돌아올 것인가에 대해서는 청와대나 민주당이나 모두 낙관적이지는 않다. 떠나가는 호남 민심을 멈추게 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되돌릴 정도는 아니라는 게 일치된 견해다.

호남지역의 한 중진의원은 “이미 호남에서 민심 이반은 시작됐다. 물론 노 대통령의 결정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이미 강을 건너간 민심이 적지 않다”면서 “일부에서는 할 것 다해놓고 ‘눈가리고 아옹’하는 것 아니냐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비주류 쪽에서도 “호남 민심은 특검은 애초부터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라는 게 기본적인 인식이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에 대해 유 정무수석은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