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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세이]한인권/유전자 검사 ‘病의 싹’을 잡는다

입력 | 2003-06-16 18:32:00


골다공증이 심한 62세의 C씨는 3년째 여성호르몬을 복용하는 환자다. 동맥경화증의 유전자 검사를 했더니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호르몬제를 다른 약으로 바꾸어 주면서 중풍의 위험성이 있으니 아스피린 100mg을 함께 복용하라고 일렀다. 1주일 후 그 환자의 남편이 진료실로 찾아왔다. 어제 아내가 중풍으로 쓰러졌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그것을 미리 알았는지 궁금해서 왔다는 것이었다.

올해는 잡슨과 크릭이 살아 있는 모든 세포에 존재해 유전정보를 전달해 주는 화학 전달물질인 DNA의 모양이 이중나선형으로 되어 있다고 발표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21세기 들어서는 2000년 6월 미국에서 ‘인간유전자 지도’가 완성돼 생명의 비밀, 여러 질병의 원인, 몸 안의 각종 생화학적 반응의 기전 등이 알려지게 됐다. 이러한 과학의 발전은 특히 의학적 측면에서 매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유전자 진단을 통한 질병의 발생 위험도를 예측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질병을 조기에 발견, 적절한 수술과 약물 투여를 통해 질병을 극복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질병에 걸리기 이전부터 질병에 걸릴 위험인자, 즉 질병과 관련된 유전인자를 발견해 환경을 조절하고 의학적인 예방조치를 취하며 질병에 대한 집중된 추적검사를 행함으로써 질병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상인 여성이라도 유방암에 관련된 BRCA-1, 2 유전자 검사에 이상이 있는 경우 30세 이전에 출산과 수유를 끝내고 타목시펜과 같은 항암제를 투여하거나, 예방적으로 정상인 유방을 절제하고 유방 성형수술로 일생을 살아가게 하는 등 좀 더 적극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폐암에 관련된 유전자에 이상을 보이는 사람의 경우, 절대적으로 담배를 끊게 하고 공해를 일으키는 환경에 근무하지 않게 하며 6개월마다 일반적인 X선으로 폐를 찍고 1년에 한 번씩은 폐사진이 정상이라도 폐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 발병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또 고혈압에 관련된 유전자에 이상을 보이는 사람은 30세부터 정기적으로 혈압을 측정하고, 유전자에 이상이 없는 사람에게는 혈압 140/90mmHg을 보이면 혈압약을 투여한다. 유전자 이상을 보이는 사람은 염분의 섭취를 절대적으로 줄일 때 혈압 조절이 잘 된다. 동맥경화에 관련된 유전자에 이상을 보이면, 종류에 따라 아스피린이나 엽산을 투여해 중풍이나 심근경색증을 예방할 수 있다.

골다공증이나 갱년기장애의 여성이 여성호르몬제를 복용하느냐 마느냐가 요즈음 대단한 관심사다. 그러나 걱정할 것이 없다. 치매 유전자, 동맥경화 유전자, 골다공증 유전자 등을 검사한 후 결과에 따라 약을 안전하게 조절하며 복용할 수 있다. 또 자궁경부암 세포검사가 정상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암 검사에서 정상이라 할지라도 암을 발생시키는 ‘인 유두종 바이러스(HPV)’를 DNA 칩으로 검사해 이상이 있으면 암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병을 발병 전부터 미리 알고 예방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이 같은 유전자 검사는 미국 병원에서 보편화되고 있으며 한국의 많은 병원들에서도 점차 일반화되는 추세에 있어 평균수명을 늘리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인권 성균관대 의대 삼성제일병원 교수·내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