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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체세력 구축 본격화]'비공식 혁신조직' 정체 아리송

입력 | 2003-06-16 18:30:00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공직사회 개혁의 핵심 주체세력으로 꼽은 ‘비공식 혁신조직’의 실체가 불분명해 정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직속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위원회에서 각 부처에 업무혁신팀 등 공식조직을 출범시켜 활동 중인 상황에서 비공식조직을 따로 만들 경우 공식라인과의 충돌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

특히 일선 공무원들은 어떤 제도를 시행할 경우 그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하고, 충분한 설명을 한 뒤에 이해를 구해야 하는데도 먼저 말을 던진 뒤 이에 대한 보충설명을 하는 방법론이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보충설명’조차도 정부 핵심 관계자들 간에 해석이 엇갈려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김병준(金秉準) 정부혁신위원장은 16일 “비공식조직은 기존의 공식조직(업무혁신팀 등)이 드러낸 한계를 보완하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부처에서는 괜히 ‘정부 개혁’하는 데 앞장섰다가 나중에 정권이라도 바뀌면 바로 ‘역적’으로 취급당할까 겁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공식조직의 소극적인 업무태도를 비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비공식조직을 이끌어갈 구체적 대상으로 △‘우리 부처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울분을 터뜨리는 열정적인 사람 △조직을 도려내는 아픔은 있더라도 업무를 다른 곳에 떼내 줘야 한다며 부처이기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 △민원인들의 집단이기적인 요구에 물러서지 않는 꿋꿋한 인사를 포함해 부처개혁에 열정이 있는 사람들을 꼽았다.

김 위원장은 “이들 비공식조직으로부터 보고서를 제출받기도 하고 e메일을 통해 대화도 나눌 것이다. 보고서가 훌륭하면 대통령에게 직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스터디 그룹’을 만드는 것처럼 정형화된 조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보면 노 대통령이 말하는 ‘비공식 혁신조직’은 일종의 비선(秘線)조직을 활성화시켜 이들로부터 생생한 조언을 받겠다는 의미가 아니냐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16일 전국 경찰지휘관 초청 특강에서는 비공식혁신주체 세력을 “뭔가를 바꿔보려고 항상 아이디어 내고 혼자 삭이지 않고 건의서를 내고 혁신을 하려는 사람”으로 규정한 뒤 이들 간의 ‘횡적 네트워크’의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도 “정부 부처 내에 5∼10명의 자발적인 비공식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노 대통령과 직접 온라인 통신망을 통해 건의도 하고 지시도 받으면서 정부가 활동비도 지원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비공식조직의 상설화’에 좀 더 무게를 뒀다.

한편 고건(高建)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언급한 조직은 공무원 개혁을 위해 액체와 같은 것으로 고체와 같은 (정형화된) 조직이 아니다”며 문 비서실장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공식조직 '업무혁신팀'▼

각 부처는 4월부터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를 지원하는 형태로 자체적인 업무혁신팀을 운영하고 있다. 청와대가 4월 7일 정부혁신지방분권위를 공식 출범시킨 데 따른 후속조치였다.

행정자치부는 ‘지방분권 정부혁신 추진지원단’, 노동부는 ‘노동행정혁신추진단’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대체로 기획관리실장이나 국장급이 팀장을 맡고 있고, 부처 특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그 밑에 행정개혁 인사개혁 업무프로세스개혁 전자정부 지방분권과 같은 개혁과제별 실무팀을 적게는 2개에서 많게는 5개까지 두고 있다. 또 건설교통부 환경부 교육인적자원부 등은 10∼30명의 외부전문가들로 민간자문위원회를 만들어 업무혁신팀을 돕도록 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한 관계자는 15일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 때는 정부 출범 초기에 조직개편과 공무원 감원을 단행해 업무혁신팀을 만들 필요성이 없었으나 새 정부는 조직개편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팀을 만든 것으로 공무원들은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교육부의 한 실무자는 “부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부처에서 자발적으로, 주도적으로, 상시적으로 변화를 진단하고 조정해서 내부개혁을 이루라는 취지로 알고 있다”고 업무혁신팀의 기능을 해석했다.

통일부와 재정경제부는 ‘노무현 코드’와 맞는 내부개혁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서기관 사무관급을 중심으로 주니어보드(소장간부팀)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통일부는 ‘부처 운영에 젊은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취지로 4월 중순 주니어보드를 만들어 벌써 8차례의 ‘샌드위치 회의’를 가졌고, 재경부도 지난달 15일 사무관급 10명으로 ‘1년 임기’의 주니어보드를 만들었다.

그러나 상당수 부처에서는 업무혁신팀을 정부혁신위원회의 지시나 권고사항을 부처에 전달하는 ‘연락창구’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김병준 정부혁신위원장도 “업무혁신팀을 만들어도 제대로 안 돌아가는 곳이 있다”며 “의견은 안 내놓고 나중에 정권이 바뀌면 역적이 될까봐 주저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업무혁신팀에 있는 사람들은 기존의 틀을 깨기가 어렵고, 눈치를 보게 마련”이라고 지적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공식조직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부작용 우려 목소리▼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개혁주체세력 양성론’에 대해 청와대는 “공직사회 개혁을 위한 공무원의 자발적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학계와 공직사회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책임과 봉사보다 정권의 개혁 코드 맞추기를 우선시하면서, 결과적으로 헌법상 보장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업공무원제의 근간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관련해 “(정부) 개혁은 대통령이 개혁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그에 공감하는 자발적 지지세력이 생겨야 성공할 수 있지, 인위적으로 지지세력을 만들고 안 따라오는 세력은 배제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김석준(金錫俊·행정학) 교수는 “대통령은 5년마다 국민의 선택을 받지만 직업공무원은 국가의 자산으로 계속 축적되는 것”이라며 “정부 내에 정권의 비선 조직을 만들면 공무원은 국민보다 대통령이나 특정 정치세력의 이해에 봉사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현행 법률이 ‘국무총리부터 각 정부부처의 차관보까지’를 정무직 공무원으로 규정하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며 “대통령이라도 자신의 임명권 한계 내에서 공직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재정경제부의 한 간부는 “업무와 관련된 비공식 조직이 힘을 얻게 되면 공식적인 조직이 죽게 된다는 것은 행정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야기”라며 “노 대통령은 공직사회의 개혁주체세력 형성 방안으로 ‘주니어보드’(중간간부회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데, 이런 비공식 조직이 개혁주체세력으로 자리 잡으면 군사정부 때의 ‘하나회’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경제부처의 한 사무관은 “선발되면 정부 코드와 맞는 공무원으로 인정받는다. 공무원이 자기 업무만 잘하면 되지 정치권 눈치까지 봐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농림부의 한 직원도 “공무원은 그 자체가 충성조직이다. 그런데 이번 정권에만 충성한다고 비공식 라인에 편입되면 5년 뒤에는 어떡하느냐”며 “결국 노 대통령의 말대로 ‘베팅을 잘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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