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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그후 1년]‘4강 신화’ 1년… 다시 모인 광장의 주역들

입력 | 2003-05-28 17:42:00

서울 시청앞 광장과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운 수많은 인파를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멘다. 오른쪽 사진은 동아일보사 앞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한 참석자들. 왼쪽부터 김정연 신문선 최영미 허진씨. 김미옥기자



한일월드컵 1주년. 지난해 6월 그 뜨거웠던 함성의 주역들이 다시 모였다. 신문선(SBS축구해설위원) 허진(전 국가대표팀 언론담당관) 최영미(작가) 김정연씨(붉은악마 지원부장)는 지난해 6월 응원석에서, 거리에서, TV 중계석에서 목놓아 ‘대∼한민국’을 외쳤던 주인공들.

월드컵과 나 ①

27일 오후 광화문 동아일보사에서 1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됐다.


허진=지난해 월드컵 한달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습니다. 내 생애에 이런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요.

김정연=안타깝게도 나는 너무 바빠 감동을 느낄 틈이 없었어요. 한국-터키의 3,4위전 때는 완전 그로기상태였으니까요.

신문선=축구는 분명히 마약입니다. 작년 6월 나는 축구 마약 중독자였던 것같아요. 신들린 듯 하루도 쉬지 않고 결승까지 중계할 수 있었던 게 그 약 기운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최영미=솔직히 난 한국이 1승하면 다행이라고 봤습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을 걸요. 그런데 개막직전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월드컵과 나 ②

허=업무 때문에 히딩크가 한국 감독으로 정식 계약하기 전 먼저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사람은 뭔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신=그게 바로 ‘고집’ 아닌가요?

허=그렇겠죠. 체코 프랑스에 0-5로 잇따라 졌을 때는 ‘큰 일 났구나’ 싶더라구요. 수많은 위기에도 히딩크를 그만두게 하지 않은 게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신=히딩크에겐 분명히 그만의 ‘독특한 리더십’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코치능력이 이전에 한국을 거쳐간 크라마, 비쇼베츠에 비해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김=응원 얘기를 해보죠. 처음엔 광화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일 줄 몰랐습니다. 붉은 악마의 힘은 대한민국의 힘이예요.

붉은악마의 힘=대한민국의 힘

신=한국과 상대하는 팀 감독들이 모두 선수들보다 응원단이 더 부담스럽다고 했잖아요. 광화문과 시청앞 광장을 꽉 메운 길거리 응원단을 볼 때마다 목이 콱 메더라구요. 누가 그러더군요. 붉은 악마는 ‘한국축구의 엄마’라고….

최=우리 민족은 스트레스와 한이 많잖아요. 한은 에너지입니다. 누가 건드리면 폭발할 수 있는 힘이고 그 힘이 응원을 통해 분출된 게 아닐까요.

월드컵 최대 수혜자는 노대통령?

허=붉은 악마를 통해 축구가 문화적 장르로 자리잡은 셈입니다. 히딩크가 신기해하더라구요. 그 많은 인파가 거리에 나왔는데도 사상자가 없다고. 쓰레기를 주워가는 것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이라고 했어요.

신=우리보다 경기력이 앞선 나라들의 축구문화는 대개 폭력적입니다. 지난해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다만 월드컵에서 창출된 에너지를 국내 프로축구 발전 에너지로 전이시키지 못한 것은 축구인으로서 뼈아프게 반성합니다.

‘폴란드 국가연주’ 방해?

최=지난해 월드컵 때 ‘우린 하나가 됐다’고 강조했는데 과연 그럴까요. 욕망이 다른 개인들이 모여 너무 하나를 강요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차근차근 나아가 어느 지점에 도달하는 게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 아닐까요.

신=축구이기 때문에 분명히 하나가 될 수는 있습니다. 월드컵이 끝난 뒤 너무 빨리 열기가 식은 게 문제죠. 이는 축구협회 선수 감독 등이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월드컵 이후 두 달 가까이 12-15%이던 축구경기 시청률이 지금 2%대까지 떨어졌어요. 큰 일입니다.

월드컵때 우린 ‘하나’ 였나

허=2006년 독일월드컵이 걱정돼요. 2002월드컵 4강이 히딩크 때문이었다는 소리를 안들으려면 최소한 16강은 가야 하는데….

김=월드컵 전까지 한국팀 수비는 엉망이었잖아요. 그래도 월드컵 이후엔 안정된 셈이지요. 2006년 월드컵 때도 안정감 있는 경기를 할 겁니다.

최=내 모든 시계는 2006독일월드컵에 맞춰놨습니다. 붉은 악마와 함께 독일로 날아가야지요. 돈이 있든 없든, 교육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열광할 수 있는 게 축구의 매력 아닐까요.

신=기왕 2006년월드컵 얘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히딩크의 성공배경을 철저히 분석하고 독일월드컵에서 뛸 수 있는 연령대의 선수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육성하는 게 급선무라고 봐요.

허=감독은 강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쿠엘류는 히딩크에 비해 좀더 외교적이고 절충적인 것 같아 걱정이예요. 한국처럼 터프하고 다이내믹한 사회에서 자기 위치를 찾으려면 강한 지도력이 필수 아닐까요.

히딩크와 쿠엘류①

김=히딩크는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노력해 끝까지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쿠엘류 감독에게도 그런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신=쿠엘류는 히당크와 색깔이 달라요. 우리와 정서, 민족성이 비슷해서인지 모르지만 좋게 말하면 신사적이라고 할까…. 아무튼 히딩크와는 다른 독특한 것이 느껴집니다.

최=쿠엘류를 자유롭게 놔 둡시다. 히딩크는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대한민국 평균 작가의 수준을 웃돌 정도였으니까요. 히딩크와 쿠엘류를 더 이상 비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히딩크와 쿠엘류②

신=히딩크 말이 나오니까 생각나는데요. 폴란드와 첫 경기 전 라커룸에 들어가니 천하의 히딩크가 덜덜 떨더라구요. 쿠엘류도 첫 경기 앞두고서는 옆에서 말도 못 붙일 정도였어요.

최=31일 한일전에서 지더라도 쿠엘류 감독을 ‘역적’으로 만들지 말았으면 합니다.

허=마지막으로 축구의 정의를 내려볼까요. 인간의 야만성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게 있을까요.

최=나는 축구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봅니다.

신=그렇습니다. 축구에서는 실제로 기적이 일어납니다. 바로 축구가 재미있는 이유죠.

2002월드컵 에피소드

정리=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