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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전망대]반병희/韓-日 FTA와 동북아 중심론

입력 | 2003-05-25 17:21:00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다음달 6일부터 나흘간 일본을 방문한다.

미국 방문의 성과에 자신을 얻은 노 대통령은 이번 방일(訪日)에도 대단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밥이나 먹고 사진이나 찍는’ 의전적인 만남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현안을 논의하겠단다.

바람직한 일이다.

두 정상이 만나 고민하고 협력을 다지는 모습은 북핵 문제와 갈수록 나빠지는 경제상황에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믿음을 줄 것이다.

특히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공조’ 외에 양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협력과 ‘동북아경제중심 구상’에 대한 일본의 지지 유도가 주 의제가 될 것이라고 하니 ‘실무성 회담’인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일본 언론들은 벌써부터 FTA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한국 정부도 이번 회담에서 상당한 진척이 있을 것으로 자신하는 분위기다.

여기서 노 대통령이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FTA 체결과 동북아 경제 중심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한중일간 FTA 체결 없이 동북아 경제 중심은 성공할 수 없다. 한국이 물류 금융 정보산업에서 중심에 서려면 FTA의 본질인 3국간 비관세장벽 철폐, 과학기술 협력, 자유로운 투자 및 인력 이동 보장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과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기에는 당장 각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고, 따라서 3국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우선 일본은 중국과의 FTA 체결에 소극적이다. 농산물을 비롯한 주요 생필품에서 가격 경쟁력이 뒤지고 동남아 화교경제권을 아우르는 중국의 ‘파워’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기술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대단히 적극적이다.

중국은 겉으로는 ‘한국 및 일본과의 조속한 체결’을 말하고 있지만 막상 본격적인 협상 개시에는 주저하는 모습이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을 먼저 경제 우군으로 만들어 뒷마당을 튼튼히 한 뒤 한국 일본을 끌어들여도 늦지 않다는 심사다. 또 FTA가 체결되면 기술이 앞선 한국과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 폭이 지금보다 훨씬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부담스러워 한다.

한국은 일본과의 선(先)체결을 선호하는 측과 중국과의 체결을 먼저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며 두 나라를 상대로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은 이런 방법론이나 절차상의 기교가 아니라 한국 정부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자세 갖추기’임을 노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노조 우위의 ‘기형적’ 노사관계, 노동시장의 경직성, 농업분야의 강력한 저항 등에 대한 해결 없이 FTA와 동북아 경제 중심론을 떠들어 봤자 상대방에게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는 노 대통령은 ‘나를 다지고 다음 상대를 공략해야 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반병희 경제부 차장 bbhe4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