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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뒤 세상을 바꿀 10대 신기술]바이오 칩

입력 | 2003-02-19 18:51:00

바이오칩 제작에는 샘플주입로봇과 같은 자동화 장비가 사용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008년 2월 어느 날 아침 L씨는 잠에서 깨자 자신의 몸 상태가 안 좋다고 느낀다. 처음엔 어제 먹은 술 때문이려니 생각했지만 곧 침대에서 혈액 한 방울로 간단한 검사를 하자 간암 초기임을 알게 된다. 바로 얼마 전에 산 바이오칩이 초기 간암임을 알려준 덕분에 L씨는 바로 수술을 받았다.》

바이오칩은 DNA, 단백질, 세포 등 생물의 몸 안에 있는 다양한 성분을 이용해 칩 형태로 만든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DNA칩, 단백질칩, 세포칩 등으로 나뉜다. 원래 DNA칩은 생물체의 게놈에 빽빽이 들어 있는 복잡한 정보를 한꺼번에 판독하기 위해 1994년 미국 애피메트릭스사의 스티브 포더 박사가 개발한 것이다.

최근에는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파악한 후 이를 이용한 DNA칩을 만들어 질병을 진단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DNA칩에 검사대상자의 혈액이나 조직에서 추출한 DNA 샘플을 한꺼번에 반응시켜 질병이 걸렸는지 여부를 손쉽게 알아내는 것이다.

현재 과학기술부 프런티어사업단의 하나인 인간유전체연구개발사업단에서는 한국인에게 많이 발병하는 위암과 간암을 진단하는 바이오칩을 개발하려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이 사업단은 위암 간암과 관련된 1500개의 유전자를 확보했는데 이 가운데서 몇 백개를 선택해 6월 이전에 1차 DNA진단칩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 사업단의 유향숙 단장은 “5년 후면 국내에서 혈액 한 방울로 위암과 간암을 진단하는 바이오칩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최근 보건복지부 국립보건원에서는 12개 질환별 유전체 연구센터를 발족시켜 한국인에게 특이하게 나타나는 유전형을 찾기 위한 지도 작성에 나섰다.

암을 진단하는 DNA칩. -동아사이언스 자료사진

단백질칩은 혈액이나 눈물에 든 단백질을 이용해 DNA칩보다 좀 더 간편하게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 원리는 단백질칩에 항체를 심고 혈액을 투여한 후 항체와 반응하는 항원이 있는지를 파악해 질병을 진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질병과 관련된 표적단백질(항체)을 아직 많이 찾지 못했다는데 있다.

2002년 말 현재 바이오칩과 관련된 시장은 미국이 4억달러 정도, 국내 시장은 40억원 미만으로 추정된다. 5년 후 바이오칩이 가정에서 널리 쓰이기는 힘들겠지만 일반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질병을 진단하는 용도로는 흔하게 쓰일 전망이다. 시장 규모는 현재보다 5배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의대 서정선 교수는 “DNA칩이나 단백질칩과 같은 바이오칩은 개인별 예측 의학시대에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량으로 값싸게 DNA나 단백질을 분석해 개인이 병에 걸릴 가능성을 파악하는데 바이오칩이 유용하게 쓰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암을 예측하고 암이 전이되는 진행 방향이나 속도를 알 수 있다.

바이오칩에는 사람의 몸 속에 이식해 혈압 혈당 체온 등 필요한 정보를 저장해 원하는 곳에 전송하는 생체 삽입용 칩도 포함된다. 이를 이용하면 환자가 갑자기 의식을 잃은 긴급상황에서도 의사는 칩에 저장된 정보를 통해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이런 생체 삽입용 칩은 실제로 지난해 미국에서 한 가족에게 이식되기도 했다. 개인의 특정 유전정보는 카드에 저장해 갖고 다닐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특정 약에 대해 과민성 체질인지, 어떤 질병을 앓았는지에 관해 의사가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손가락의 피 한 방울로 개인의 유전정보가 순식간에 판독돼 신원을 파악하는 일은 이제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