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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애니메이션]'보물성' 신화적 감성 녹여 낸 따뜻한 SF

입력 | 2002-12-26 18:59:00

사진제공 브에나비스타 코리아


“…우리의 내부에는 속으로 알찬 꿈의 판테온(만신전·萬神殿)이 있다. 최신형 오이디푸스의 화신, 미녀와 야수의 속편이 오늘 오후에도 뉴욕의 42번가와 50번가 모퉁이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불행과 결함을 딛고 소명을 따라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신화적 영웅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매료시킨다.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스타워즈’와 ‘스파이더 맨’도 넓게 보면 모두 그 같은 영웅담이라는 스펙트럼 안에 속해있다.

디즈니의 새 애니메이션 ‘보물성’(Treasure Planet)도 “다함없는 우주 에너지가 인류의 문화로 발로하는 은밀한 통로”인 신화에 기대어 영웅의 모험담을 새롭게 변주하는 또 하나의 시도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잘 알려진 고전 ‘보물섬’을 소재로 한 영화가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30편이 넘게 제작됐지만, ‘보물성’은 이 친숙한 이야기를 우주 공간에 펼쳐놓았다.

아버지 없이 외롭게 자라, 솔라 보드를 타고 허공을 질주하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반항아 짐 호킨스. 전설로만 전해오던 보물성 지도를 우연히 얻게 된 그는 보물을 찾아 우주로 떠난 뒤 숱한 고난을 겪는다.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이 영화의 프로듀서 로이 콘리는 “미국 영화의 이야기구조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마 신화학자 조셉 캠벨일 것”이라면서 “판타지 SF영화인 ‘보물성’을 만들 때도 원작 속에 깃든 신화적 정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보물성’은 우주를 배경 삼아 인간과 외계인이 공존하고 있지만, 우주선이 아니라 범선이 우주 공간을 날아다닌다. 하이테크 무기와 장치들이 수시로 등장하는데도 배경 그림은 유화의 붓 터치를 연상시킬 만큼 고전적이다.

고전의 핵심, 신화적 정신과 우주 공간의 이미지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과정을 설명한 아트 디렉터, 애니메이터들은 기술적 발전에 힘입은 바가 컸다고 입을 모은다.

유화의 붓 터치를 살리기 위해 컴퓨터의 커서로 붓 터치를 만들어내는 ‘브랜디와인 스타일 오일 페인팅’ 기법을 도입했다. 컴퓨터 안에 3차원 세트를 만들고 카메라가 그 안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한 ‘버추얼 세트’, 세트를 일일이 다시 그리지 않고도 조명의 변경이 가능한 ‘인터랙티브 라이팅 프로그램’등의 첨단 컴퓨터 기술도 입체적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데에 한 몫 했다.

그러나 관객들을 웃기고 울릴 캐릭터는 ‘기술’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주인공 짐 호킨스와 함께 영화를 이끌고 갈 캐릭터는 선, 악의 두 얼굴을 갖고 있는 해적 실버. 실버를 그린 애니메이터 글렌 킨은 “실버의 세월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 주름을 연상하며 실버를 그렸다”고 말했다. 컴퓨터를 전혀 쓸 줄 모른다는 그가 실버의 눈빛을 그릴 때 참조한 모델은 “고교시절에 실수해도 따뜻하게 끌어 안아주던 풋볼 코치”였다. 전체 관람가. 1월 10일 개봉.

로스앤젤레스〓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보물성'공동감독 클레멘츠-머스커 "2D-3D결합 금속성 없애"▼

‘보물성’의 공동 감독 존 머스커 (왼쪽)와 론 클레멘츠. 사진제공 브에나비스타 코리아

“2D (Dimensions·차원)와 3D를 결합했으니 이 영화는 5D 영화예요. 가장 ‘고차원’이죠.”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만난 ‘보물성’의 공동 감독 론 클레멘츠와 존 머스커는 ‘5D 영화’에 대한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들은 1989년 ‘인어공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콤비. ‘알라딘’(1992), ‘헤라클레스’(1997)도 이들의 지휘 하에 만들어졌다. ‘보물성’ 기획이 시작된 때는 17년 전. 그러나 “당시만 해도 우주 공간을 실감나게 묘사할 기술적 수단이 없어서” 오랫동안 묵혀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제작진은 ‘보물성’의 캐릭터들을 2D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그린 반면, 배경은 3D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해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이에 대해 론 클레멘츠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결합된 정서를 영화에 불어넣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3D 애니메이션은 전체적으로 차가운 느낌 때문에 쉽게 감정이입을 하기 어렵고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반면 2D 애니메이션은 정서적이지만 불완전한 느낌을 준다. 두 기법을 결합해 SF 특유의 금속성 느낌을 없애고 인간적 온기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들은 “동시대와 교감하기 위해 솔라 보드처럼 익스트림 스포츠의 컨셉트를 영화에 집어넣었지만, 시대 배경은 사실 별 의미 없다. 좋은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